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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총리가 맞은 「어린 손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퇴임을 엿새 앞둔 현승종 국무총리는 19일 낮 재임 중 가장 어린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네가 경렬이냐? 손 한번 만져 볼까. 네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아버지도 같이 오시지 그랬니.』
『아버지는 폐가 될지 모른다며….』
이날 낮 충남 대덕의 과학기술원 원장실에서 현 총리는 박경렬군(13·충북 옥천군 군서국교 6년)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현 총리와 박군을 맺어준 인연은 총리의 낡은 외투 한 벌.
현 총리는 지난해 11월 중순쯤 삼청동 총리공관근처의 한 세탁소에 소매 끝이 헌 자신의 외투를 수선해달라고 맡겼다. 이 같은 내용의 신문보도를 아버지 박모씨(대전 중경공업전문대 고용원)로부터 전해들은 박군은 총리 할아버지에게 지난해 12월초 한 통의 편지를 썼다.
『총리 할아버지의 검소하심을 아버지한테 듣고 나서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박군은 이 편지에 자신의 저금통을 깨 마련한 5천원까리 소액환3장을 동봉하면서 현 총리께서 입으시는 옷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수선이 된다면 더 없는 영광으로 알겠습니다』고 덧붙였다.
현 총리는 지난주 박군을 서울로 불러 총리공관에서 저녁을 함께 하며 하룻밤 재우려했으나 박군과 그 아버지가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이날 과학기술원 졸업식에 참석하는 길에 박군을 만나기로 계획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준 1만5천원은 어느 재벌이 준 몇 십 억원보다 값어치가 있다. 그래서 아직 쓰지 못하고 있다. 이 돈의 정성은 이미 내가 받았으니 네가 유용하게 써라. 그리고 네 정성이 너무 고마워 개인용 컴퓨터 1대를 마련했다. 할아버지의 선물로 알고 받아다오.』
현 총리로부터 컴퓨터구입권을 받은 박군은 집에서 재배한 영지버섯 한 통을 총리에게 답례로 수줍게 내밀었다. 【대덕=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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