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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이 처음 가본 금수산기념궁전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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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 '김일성 사회주의'로 부른다. 평양을 방문하면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련된 상징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북한 사회의 집단주의적 특성은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본지는 60여 년 동안 우리와 다른 길을 걸어온 북한 사회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현장 취재에 주력해 왔다. 1997~98년 4차에 걸친 북한 문화유적 답사 취재, 지난해 5월 북한 경제현장 취재도 그 일환이다. 이번 취재도 북한 체제의 독특함을 파악하고 북한 사회의 실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획했다.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순안공항에 내려 평양 시내 호텔까지 이동하는 중간에 반드시 지나가는 곳이 있다. 시내로 진입하는 금릉동굴을 빠져 나가면 잘 정비된 왕복 6차로 도로가 펼쳐진다. 500여m에 달하는 이 도로 끝에는 밝은 회색의 웅장한 화강암 건물 금수산기념궁전이 자리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이 안치돼 있는 곳이다. 건물 윗부분에 김 주석의 커다란 초상이 걸려 있고 주변 정리가 잘돼 있어 북한이 신성시하는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평양 도착 이틀째인 5월 11일 저녁. 취재단을 안내하는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관계자는 "내일은 모두 정장을 입어 달라"고 주문했다. 자신들이 최고의 성지(聖地)로 여기는 곳인 만큼 최초로 내부 사진 촬영을 허가하는 등 취재 편의는 제공하지만 예의는 갖춰 달라는 것이었다. 취재진이 방문했던 다음날 오전 이곳을 찾은 400여 명의 주민들도 남자는 양복 또는 인민복, 여자는 한복 등 정장 차림이었다.

기념궁전은 김일성이 생전에 집무실로 사용했던 곳. 북한 당국은 94년 7월 그가 사망하자 1년 동안 건물의 모든 창문을 벽체와 같은 화강암으로 막고 주변 조경을 다시 하는 등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담장은 학과 구름을 조각한 화강암으로 만들고 대문에는 금빛 대원수(大元帥) 견장과 목란, 진달래 꽃을 부조했다.

북한 주민들은 대성구역 용흥 2동 금성거리 초입, 김일성종합대 맞은편에 있는 전용 궤도전차 승차장에 모여 기념궁전으로 가도록 돼 있다. 외국 대표단은 자동차로 경내까지 가는 게 보통이다.

궤도전차 승차장부터 주민들은 일절 말이 없었다. 궤도전차 승차장에서 기념궁전까지 2.5㎞를 이동하는 7분여 동안 국방색 군복에 흰 장갑을 낀 여성 안내원이 "지금 여러분께서는 주체의 혁명성지인 금수산기념궁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안내 방송을 계속했다.

전차에서 내려 외랑(外廊, 기념궁전 건물로 이동하는 통로) 입구에 도착하면 본격적인 참관 일정이 시작된다. 해설강사의 안내에 따라 먼저 신발의 먼지를 제거하는 발판을 지나 신발 바닥을 소독하고 나면 검색대가 나타난다. 기념궁전 실내에서 볼펜 등 일체의 금속물체를 소지할 수 없다.

이후 3개로 나누어진 총 340m의 수평 에스컬레이터와 수직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외랑을 통과해 본관 내부로 이동한다. 이동시간은 10여 분. 95년 7월 개관 당시에는 외랑과 에스컬레이터가 없었지만 궂은 날씨에도 참관하기 쉽게 97년에 새로 설치했다고 한다.

본관에 들어서면 흰 대리석으로 조각한 6~7m 높이의 김 주석의 입상(立像)이 나타난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3~4명씩 줄지어 목례를 하고 계단을 이용해 안치실과 훈장실이 있는 위층으로 이동한다. 취재진은 승강기를 이용했다. 취재진의 촬영은 승강기를 타기 전까지만 허용됐고 카메라도 별도로 맡겨야 했다. 민화협 관계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안치실에서 사진 촬영을 허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로.세로 30m, 높이가 20m가량 돼 보이는 안치실에 들어서면 호위병들의 안내에 따라 3명씩 나뉘어 김 주석이 누워 있는 유리관 주변을 한 바퀴 돈다. 발치와 왼쪽 옆에서 목례를 하고 머리쪽을 돈 뒤 다시 오른쪽 옆에서 목례를 하고 안치실을 빠져나가도록 돼 있다.

김 주석은 세로 2m 남짓, 가로 1.5m, 높이 1m가량의 투명 유리관 안에 검은 양복 차림으로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가슴까지는 붉은 헝겊으로 덮여 있고 얼굴은 순백에 가까운 흰색이었다. 바닥과 천장 벽면이 모두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안치실 내부는 다소 어두웠지만 유리관 내부는 어디서 비치는지 모를 조명으로 환했다.

안치실을 벗어난 뒤엔 김일성이 생전에 받았던 훈장을 전시한 '훈장실'을 둘러보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울음홀'과 김 주석이 이용했던 승용차(벤츠 600 V12)와 열차를 관람했다.

울음홀은 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시신이 안치됐던 곳으로 북한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통곡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사방 벽면에 김 주석의 죽음을 슬퍼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부조가 붙어 있다. 이후 책상 17개가 놓인 방명록 기록실을 거쳐 건물을 빠져 나갔다. 주민들은 다시 외랑을 거쳐 건물 앞 광장으로 나가 대문과 울타리, 연못 등을 둘러보고 전차를 이용해 출발했던 장소로 이동한다. 취재진은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나왔다.

취재진은 광장에서 기념궁전 행사담당 김주성(45)씨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김씨는 기자들의 취재에 익숙하지 않은 듯 기념궁전 면적 등을 묻는 질문에 "수십만㎡ 됩니다"고 답하는 등 애를 먹었다. 김씨는 시신 보존방법 등에 대해선 "말하지 못할 것도 있습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평양=특별취재단: 강영진·이철희·정용수 기자, 김형수 사진기자, 유영구·정창현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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