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산업자재의 이마트'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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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트 코퍼레이션은 글로벌 화학 회사와 건축자재 업체에서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 공급하는 전문유통업체이다. 이 회사 조무현 사장이 6일 성남시 수내동에 있는 본사 집무실에서 바닥재 견본품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조문규 기자]

로지트 코퍼레이션은 화학·소재 유통 전문기업이다. 바스프·데구사·미쓰비시레이온 등 글로벌 메이저 화학회사에서 제품 수 천가지를 들여와 국내 제조업체에 공급한다. 사명 로지트(LOJIT)는 ‘물류를 제 때에(LOgistics Just In Time)’라는 영어 표현에서 따왔다.

 이 회사 창업주 이영훈(58) 회장은 대학생 때부터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연세대 화학과 재학 시절 명동에 ‘캠퍼스’라는 음악 다방을 운영했다. ‘캠퍼스’는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를 끌며 이대 앞에 2호점까지 냈다.

 졸업 후 이 회장은 전공을 살려 1975년 고향인 부산에 ‘삼정화공약품상사’를 열었다. 직원 3명을 두고 버너에 쓰는 알코올과 페인트에 섞어 쓰는 첨가제·희석제 등 각종 화공약품을 팔았다. 이 작은 가게가 발전을 거듭해 지난해 매출액 1103억원, 순이익 15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로지트는 2000년대 들어 사업 분야를 화학소재와 인쇄기 수입 판매로 넓혔다. 지난해에는 전문경영인 조무현(54) 사장을 영입해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수출품의 핵심 원료 수입=로지트는 설립 초기 국내 정유·화학회사와 소비자를 잇는 중간 유통상 역할을 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원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구매처를 해외로 넓혔다. 화학제품을 팔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과 이를 필요로 하는 국내 중소 제조업체를 연결했다.

로지트는 미국·일본·유럽의 화학회사들이 생산하는 특화된 제품을 다품종 소량으로 들여왔다. 주로 국내에서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생산량이 부족한 제품들이었다. 조 사장은 “수입한 화학·소재 제품은 다시 주력 수출 상품의 핵심 원료로 이용됐다”며 “80년대 수출 증진과 국내 원료 수급 안정화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주요 수입 품목은 아크릴레이트·메틸메타크릴레이트(MMA) 등 화학제품. 이들 제품들은 국내 석유화학·전자·자동차·페인트·생활용품 등 산업분야의 기초 원료로 활용된다.

바스프에서 들여오는 아크릴레이트가 페인트 제조업체에 납품돼 첨가제와 점착제로 쓰이고, 페인트는 수출 주력산업인 자동차·선박·전자제품에 사용된다. 88년에는 지붕재·원목마루·방부목 등 건축자재 수입을 시작했고, 2000년 폴리머와 실리콘도 들여오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미 휼렛패커드의 디지털인쇄기를 국내 독점 판매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는 위기이자 기회=전액 외화로 대금을 결제해야 하는 로지트는 97년 외환위기를 호되게 겪었다. 계약을 하고 물건을 선적한 뒤 대금을 결제하는데, 계약과 결제 사이 불과 몇 개월 동안 환율이 2~3배 올랐다. 원화로 100억원쯤 손해를 보게 됐다. 회사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에 오랜 거래처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주었다.

바스프 등 일부 회사들이 “환율이 어느 정도 떨어지면 갚아라”라며 대금 지불을 유예해줬다. 로지트의 신용을 믿고 취한 조치였다. 97년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19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이듬해 흑자로 전환했다.

위기를 넘기니 오히려 기회가 왔다. 거래처에서는 계속해서 국제 가격보다 싸게 물건을 공급해줬다. 대금 결제 기간도 길게 배려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업계에는 현금 거래가 정착됐다. 국내 업체로부터 현금으로 수금하고, 해외 기업에는 대금을 늦게 줄 수 있었고, 게다가 금리까지 높으니 이익을 낼 수 있었다.

 ◆화학 유통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조사장은 요즘 사업 다각화 구상을 하고 있다. 화학 유통을 기반으로 실리콘·건축자재·정보기술(IT) 유통을 강화하고, 새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지난해 매출액의 60%를 차지한 화학 사업은 2010년까지 35%로 줄이고, 현재 소재 분야는 24%에서 30%로, 건축자재는 11%에서 20%로, IT 사업은 5%에서 15%로 늘릴 계획이다.

또 좋은 기술이나 사업을 가진 회사에 적극적으로 지분 참여를 해서 원료 공급처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부가가치도 높이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제조업 진출에 대한 실험도 계속하고 있다. 발코니용과 전기절연용 실리콘 실란트를 생산하는 소규모(연간 6000t) 자체 공장을 충북 음성군에 확장 이전했다.

 조사장의 꿈은 로지트를 ‘산업 자재계의 이마트’로 만드는 것이다.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외부에서 소싱해서 판매하면서 이마트라는 브랜드를 붙여 가치를 높이잖아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다양하게 갖추고, 최상의 품질로 제공하겠습니다.”
 조사장은 삼성종합화학 도쿄 사무소장과 전략기획담당, 삼성정밀화학 경영기획실장과 도료사업본부장을 지냈다. 2002년 국순당 상임감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이 회사에 합류했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로지트 코퍼레이션>
-설립:1975년 5월
-대표이사:이영훈 회장, 조무현 사장
-본사: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사업장: 경남 양산시, 충북 음성군,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임직원: 96명
-사업분야:화학제품·디지털인쇄기·건축자재 수입 및 유통, 실리콘 생산
-자회사:로지트 인베스트먼트, 로지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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