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독서수준|양문길<소설가·영풍문고 홍보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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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통상적으로 계량의 결과인 실속은 어느 한 분야의 규모를 가늠하는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된다. 출판실적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작년 한해 우리 출판의 현 단계를 짐작케 하는 통계수치가 발표됐다. 출판문화협회가 납 본 되는 도서를 기준으로 밝힌 지난 1년간 우리의 출판실적을 보면, 한해동안 2만4천7백 종의 새로운 책을 도합 1억3전6백만 권 가량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우리 출판계가 하루에 신간도서 67종을, 37만2천 권 정도 펴내고 있는 것이 된다.
외형적으로 나타나 있는 이 같은 실적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전세계적으로 10위 권안에 들 정도의 대단한 물량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우리 출판계가 세계의 출판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 출판물을 수용하는 최종 소비자, 즉 독자들의 읽기 수준은 과연 어디쯤 와 있을까. 매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또 다른 통계는 그러한 질문에 대단히 부정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어 충격을 던져 준다.
한국여론조사 연구소에서 실시한 최근의 어떤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가운데 71·4%가 한 달에 책을 거의 읽고 있지 않거나 혹은 한 권 이하로 읽고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즉 이는 우리 국민의 연간 독서량 이 2·7권이라는 수년전의 조사통계를 명확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결과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한국은행이 11개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국민소득과 생활수준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알콜 성 음료의 소비지수에서 한국이 190·8로 가장 높고 직물 류 소비지수 또한 295·9로 톱을 달리고 있는데 비해, 도서·신문구입 비는 홍콩의 156·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0·3을 기록, 태국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과 옷 등 마시고 입는데 대한소비지출이 아시아 11개국가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책과 신문을 보는데 들이는 돈은 저개발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결론은 명백하다. 우리 출판계의 현주소를 명약관화하게 보여주는 이 기이한 불균형의 원인을 찾고, 이를 개선하는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는 일이다.
때마침 올해가「책의 해」인 만큼 이제는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독서를 하나의「운동」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이에 가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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