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다 하면 수백 명 초대형 전시 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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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적게는 90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작가들이 떼지어 참가하는 초대형 전시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예년에 비해 전시 건수가 격감한 가운데 개인전보다 그룹전이 주류를 이루고, 초대형 전시가 눈에 띄게 늘어난 점이 올 화랑 가의 가장 큰 특징이다.
「93한국청년미술제-서울에서의 만남 전」「93 VISAVIS 전」「93 청남 신춘기획 전」「한중미술 교류 전」등 전시중인 것만 4건에 19일부터 열릴「예술의 전당 전관개관기념 현대미술전」과 4일 끝난「한국미술 2000년대의 도전 전」을 더하면 2월중 개최되는 초대형 전시만 6건에 달한다. 이들 초대형 전시들은 뚜렷한 주제가 없고 작가 선정의 기준도 모호한 것이 공통점이다.
공평아트센터가 개관 2주년 기념으로 지역작가 4백80명을 초대해 3월23일까지 열고 있는 「93한국청년미술제-서울에서의 만남 전」은 지역작가들을 중앙화단에 소개하는 의미 외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단성 갤러리의「93VISAVIS전」과 청남 아트갤러리의「93 청남 신춘기획 전」도 특징이 없기는 마찬가지.
굳이 특징을 찾자면 두 전시 모두 20∼30대 젊은 작가들이 주축을 이루고「93 청남 신춘기획 전」의 경우 평면회화를 중심으로 모았다는 정도다.
예술의 전당 전관개관을 기념해 19일부터 3월18일까지 열리는「현대미술전」도 한국화·서양화·조각·공예 등 4개 부문에 4백15명의 많은 작가들이 참가한다는 것 의엔 내세울 만한 특징이 없다.
이 때문에 미술계 안팎에서는『왜 이 같은 백화점식 전시회들이 열려야 하느냐』며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70년대 한때 유행했다 사라진 초대형 전시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90년대 들어 우리 미술계가 특정한 주류 없이 다양한 이념이 혼재하는 다원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밖에 화랑들이 불황의 긴 터널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점, 남이 기획한 전시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으려는 비평 부재의 풍토, 화단 내부의 고질적인 힘 겨루기, 작가들의 조급성 등도 함께 지적된다.
한편 전시 기획 자들은『한국미술의 문제와 이를 해결하려는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형전시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미술평론가 서성록씨는「93 청남 신춘기획 전」도록 서문에서『오늘의 우리 미술계는 새로운 조정국면을 맞고 있다』고 전제,『이 같은 조정 기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젊은 작가들의 다원화현상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화랑들의 얄팍한 상혼, 작가들의 조급성을 동시에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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