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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의 과학과 문학 사이]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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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이은희의 과학과 문학 사이'를 새로 연재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현대 과학의 연구 성과를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알기 쉽게 풀이할 작정입니다. 물론 매개체는 책입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경생리학을 전공한 이씨는 현재 태평양 기술연구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라하라의 생물학 카페''과학 읽어주는 여자' 등의 교양 과학서를 썼습니다.

사탕을 마다하는 아이가 있을까? 울며 떼쓰던 아이도 눈물 가득 고인 눈에 사탕을 물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행복해한다. 그런 아이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당신에게도 어린 시절, 제과점 유리창 근처에 줄줄이 꽂혀 있던 손바닥만한 막대사탕을 원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른이 돼도 단맛의 유혹은 여전하다. 단것을 많이 먹는 것은 치아를 상하게 하고 비만을 일으키며 당뇨병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고, 때론 이런 이유로 단것을 멀리한다. 하지만 감칠맛 나는 초콜릿이나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크림치즈 케이크,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의 유혹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이제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향을 정당화할 근거가 생겨났다. 달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것은 개인의 의지 박약이 아니라 인간의 생체 시스템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기름지고 달콤한 맛을 지닌 음식들은 뇌의 내인성 오피오이드(opioid) 분비를 촉진한다고 한다. 오피오이드는 원래 아편과 같은 작용을 하는 진통제를 일컫는 말이지만, 우리 체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물질이 존재하기에 이를 내인성 오피오이드, 또는 천연 오피오이드라고 부른다. 그 대표 주자가 그 유명한 엔도르핀(endorphin)이다.

초콜릿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신경과학 연구소의 대니얼 피오멜리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초콜릿에는 아난다마이드 (anandamide)와 비슷한 물질이 들어 있다고 한다.

아난다마이드는 마리화나의 정신활성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과 마찬가지로 도취감을 유발하는 작용을 한다. 게다가 초콜릿에는 마약 성분인 암페타민과 비슷한 물질이 들어 있어 기분을 좋아지게 하고, 마그네슘이 들어 있어 여성들의 생리전 증후군(PMS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 단것은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심각하게 중독을 일으키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행복감을 주기 때문에 끊기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의 무스 쇼콜라의 유혹은 매우 강렬하다. 달걀과 설탕과 녹인 초콜릿을 휘저어 살짝 구운 후 코앙트로주를 섞고 차게 식힌 디저트의 제왕 무스 쇼콜라. 차가우면서도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온몸에 가득 퍼지면, 이렇게 달콤한 악마에겐 내 영혼을 팔아도 좋을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무라카미 류는 퇴폐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지극히 건조하고 지루한 투로 얘기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독자가 아무리 충격적인 이야기라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의 글은 여성과 섹스를 음식에 비유해 인간의 식욕과 성욕을 지독하게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묘사하고 있지만, 한번쯤 그가 묘사한 서른두가지의 맛을 상상하며 그 맛을 음미하고픈 유혹에 빠뜨린다. 영혼을 중독시키는 달콤한 악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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