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는 「우리편」개혁부터(송진혁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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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침 김영삼차기대통령이 부정부패 방지를 국정 최우선 순위로 정하고 그 실현방안에 골몰하고 있을때 대규모 대입부정 사건이 터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김 차기대통령도 이번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부패의 두께와 넓이를 새삼 실감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좋든 싫든 운명적으로 부패와의 대전을 치러내야만 할 형국이고 이 전쟁을 이겨내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다.
○대입부정 이번뿐인가
확실히 이번 대입부정 사건은 충격적이다. 선생이 제자를 범죄도구로 이용하고 부모가 자식을 평생 고개못들 죄인으로 만드는 일이 세상천지에 어디있겠는가. 가장 믿었던 학교,신뢰의 마지막 보루라할 교육에서 마저 이런 엄청난 부패를 보면서 누구나 우리사회에 대한 위기감·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냉정히 생각해보자. 이번 대입부정과 같은 일을 우리는 처음 보는가. 이런 부패가 우리사회에 존재함을 그전에는 정말 몰랐던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우리는 이미 온갖 유형의 부패에 익숙할대로 익숙해있고 부패의 속에서 살아온 세월이 돼도 한참됐다. 대입부정만 해도 이번에 규모가 크고 더 조직적이며 다발적으로 적발됐다뿐이지 이미 여러차례 겪었던 일이다. 가깝게는 예·체능계 입시부정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고 심지어 학생대표라며 북행했던 학생이 실은 부정입학생이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뒤늦게 안 일도 있었다.
학교가 몽땅 범죄집단 노릇을 하고 선생이 제자를 범죄로 내몬 것은 정말 충격적이지만 지난 대선에서도 봤듯이 사장이 사원을 범죄로 내몰고 지도자가 추종자를 감옥으로 보내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르는체 하면서도 사실은 다 알고있다. 대소간의 부패없이는 기업도 할 수 없고 정치도 할 수 없으며,득세와 치부의 뒤에는 십중팔구 부패의 컴컴한 그림자가 깃들여 있음을 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들키지 않으면 누구든 「한건」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보는 눈이 없으면 언제라도 부패할 개연성으로 가득차 있는게 지금 우리 사회 아닌가.
○백성에만 외쳐선 헛일
과거에도 부패에 대한 위기감이나 문제의식이 없었던게 아니다. 역대정권마다 서정쇄신이니 사회정화니 하고 떠들면서 수 없이 엄포를 놓고 내쫓고 잡아가두고 하는 일을 반복했지만 부패의 늪은 더 깊고 넓어져 왔을 뿐이다.
역대정권은 왜 부패를 차단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새로 나설 김 정권은 과연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대입부정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이 문제일 것이다.
역대정권이 부패를 막지못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가지는 정권 스스로가 부패의 원천이 됐다는 점이다. 5·16,10월유신,5·17이 다 무엇이겠는가. 정당하지 못한 과정과 방법으로 정권을 잡고 정권을 연장한 것이 아닌가. 바로 성즉군왕이요 패즉역적이라,한건 하고보자,수단·방법 가릴 것 없이 잡고보자는 「모범」을 정권 스스로가 국민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정권 자체가 국민에게 「치부를 하되 정당한 과정으로 하라」「수단·방법을 안가리는 출세는 안된다」고 말할 자격이 원천적으로 제약받는 원죄를 타고 난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정권의 부도덕성이다. 부정선거·왜곡된 선거제도로 정권을 유지·강화하고 차관·정부공사에서 공공연히 정치자금을 뜯고 뇌물과 특혜를 교환하며 정기적으로 상납 받아온게 지난 세월 아닌가. 기업의 최대관심이 뇌물전달의 채널확보에 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상층구조가 이처럼 원죄를 안고 부패구조로 돌아갈때 기업과 민간에 부패의 계열화·전신만신 부패현상이 안생긴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반부패 노력이 허구로 끝난 것은 집권자와 집권세력을 항상 대상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자기들은 따로 놀고 백성들만 쇄신하고 정화하라니 애시당초 될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10·26의 궁정동 만찬이나 5공의 친·인척을 생각하면 다 뻔한 일이다. 이렇게 볼때 오늘의 부패문제도 결국 지난 30년의 어둡고 불행한 정치를 떼놓고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민자당부터 손질해야
이런 과거의 경험과 비교하면 김 정권은 부패와의 전쟁에서 한결 유리한 입장이다. 우선 「원죄」가 없다. 정당한 과정으로 국민의 축복을 받으면 성립되는 정권이다. 문제는 김 정권 역시 스스로를 반부패의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다. 과거처럼 「나」와 「우리편」은 빠지고 백성들을 향해서만 부패추방을 외쳐서는 헛일이다. 「우리편」의 개혁없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김 차기대통령의 「우리편」은 누구인가. 두말 할 것 없이 그것은 1차로 민자당이다. 그리고 2차로는 새로 탄생할 김 정권 요인들이다.
지금 차기대통령 주변에서 개혁과 반부패의 목청은 높으나 「우리편」에 대한 개혁의 움직임은 볼수가 없다. 이 개혁고창지절에 용케도(?) 행정부에 인사청탁을 하는 민자당의원,월 수십억원의 당살림,수십억원짜리 의원선거 구조의 정치 부패구조가 그대로 있는한 우리 사회의 부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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