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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피플] “SF는 과학소설이지 오락물 아니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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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제발 SF(Science Fiction)를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하지 마세요.”
 월간 ‘판타스틱’편집장 박상준(40·사진)씨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번역 얘기부터 꺼냈다. SF는 과학소설일 뿐, ‘공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상’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그동안 SF는 두 가지 편견에 시달렸어요. 하나는 황당하고 유치한 오락물이라는 것, 그리고 또하나는 너무 어려워 마니아들만 즐길 수 있다는 것. 둘 다 아니에요.”

 박씨는 우리나라에서 SF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SF 전문가다. 1991년부터 SF 번역·비평·출판 기획을 하며 15년을 프리랜서로 살았다. 『세계SF걸작선』(편역), 『화씨451』(옮김), 『로빈슨크루소 따라잡기』(공저) 등 20여권의 책도 냈다. 지난해 말부터 맡은 ‘판타스틱’ 편집장은 그의 첫 공식 직함이다. ‘판타스틱’은 SF·판타지·추리물 등을 다루는 장르문학 전문지로, 지난 5월 창간호를 냈다.

 박씨는 SF를 “미래의 모습을 과학적·합리적으로 예측해 그린 소설”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장르, 미래를 보는 창”이란다. “SF를 보면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커진다”는 그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뒷일을 생각 안하는 좁은 시야, 나와 내 가족, 내 나라 등에 갇혀있는 편협한 이기심 등이 SF를 통해 극복된다는 것이다.

 그는 중학생 때 아서 클라크의 『지구 유년기 끝날 때』를 읽으면서 SF 세계에 눈을 떴다.

“인류문명의 미래를 다룬 책이에요. 우주 괴물이 나와 우주에서 액션 펼치는 것만 SF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한양대 지구해양학과에 들어갔다. 영어도 공부할 겸 동네 헌책방을 다니며 구해 읽은 SF 원서는 그의 진로를 바꿔놨다. 85학번인 그는 SF에 ‘386’스러운 기대를 걸었다.

 “SF를 보급하는 게 우리 사회를 변혁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언제까지 ‘남한 사회의 민주화’라는 짧은 호흡의 변혁만 꿈꿀 수는 없는 거니까요. ‘SF로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이 더 넓을 시야를 갖게 된다면 그게 사회에 대한 기여다’란 생각이었죠.”

 그의 말대로라면 SF를 읽고 말고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시야를 넓히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장르가 아닐까. SF 문외한들도 즐길 만한 책으로 『당신 인생의 이야기』(행복한책읽기)와 『어둠의 속도』(북스피어)를 권했다. 그리고 청소년용으로는 『마일즈의 전쟁』(행복한책읽기)을 꼽았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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