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상조 미덕 120년 “대물림”/보부상 부조계 고령 좌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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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860년대 내부결속위해 조직/보부상 사라졌지만 후손들이 정신계승/매년 정월대보름에 총회열고 화목다져
조선조후기 영남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한 보부상들의 부조계가 대물림해온 1백여점의 귀중한 민속자료들이 그 후손들에 의해 1백20여년간 이어져 오고 있다.
경북 고령군 고령읍 고아리 고령좌사계­.
현재 1백28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좌사계는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날 총회를 열고 임기 1년의 새로운 반수와 접장을 선출한뒤 이미 세상을 떠난 역대 반수와 접장 1백33위의 위패를 모신 가운데 푸짐한 제상을 마련,대제를 올려 조상의 유덕을 기리며 각 마을의 안일을 기원하는 지신밟기 등 농악놀이로 하루를 즐기는 것이 연중 가장 큰 행사의 하나.
이때 지신을 밟고 회원들로부터 거둬들인 곡식과 금품을 기금으로 삼아 음력 3월8일과 4월8일,7월7일,9월9일 등 연간 네차례에 걸쳐 좌사계의 첫 우두머리였던 조선조후기 좌상대도접장(보부상 우두머리) 백초산을 기리는 시제를 올리고 대물려 온 계답 다섯마지기(1천평)에서 수확하는 쌀은 회원들의 길·흉사때 부조금으로 쓰이고 있다. 현재 자사계접장은 무한연임제에 의해 7년째 연임하고 있는 곽차효씨(67).
고령 좌사계가 이같이 1세기가 훨씬 지나도록 오랜 세월을 거쳐 대물림해온 것은 조상을 섬기는 후손들의 숭모정신과 서로 돕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엄격한 규범이 삶의 끈기로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고령 좌사계는 조선조 5백년 역사가 기울던 고종 4년(1866) 고령 부조장터에서 상권을 장악한 접장 백초산이 보부상들의 상거래질서와 서민층의 유통구조를 바로 세우고 보부상 상호간에 예의와 규율을 지키며 부조정신을 함양시켜 당시 천시받던 보부상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조직한데서 비롯됐다.
일제 암흑기에도 좌사계의 역사를 간직한 객주가 여러채 남아 성시를 이루던 부조장터는 8·15해방이후 오랜 풍상에 낡고 퇴락해 붕괴되는 바람에 가까스로 5일장으로 명맥을 이어오다 60년대 이후엔 완전히 폐쇄되어 지금은 그 번창하던 옛모습을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다만 보부상들의 조직계보와 상거래실태를 기록한 문집과 반수의 지휘봉인 물금장 등 유품 18점이 중요민속자료 제30호로 지정돼 있고 그동안 상권활동에 쓰여진 각종문서 1백여점이 전통적인 풍습과 함께 후손들에 의해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
영남대 권병탁교수(65·경제사)는 『조선조의 좌사가계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곳은 고령좌사계뿐』이라고 지적,『정부차원에서 좌사계의 역사를 집대성하고 보부상들의 유물과 정신을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령=김선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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