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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2차 금융빅뱅 <下> 위기 느끼는 은행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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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돈 벌 곳이 없다.”

 요즘 내로라하는 은행장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월례조회 때마다 ‘위기 경영’을 강조한다. 새 돈벌이를 찾고, 체질을 강화하지 않으면 막 시작된 2차 금융빅뱅에서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은행의 전통적 수입원인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은 은행·증권사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통과로 예금에서 투자로 옮아가는 ‘머니 무브’ 현상도 빨라지고 있다.

 시중은행장들의 이달 월례조례사엔 이런 위기감들이 구구절절이 담겨 있다. 리딩뱅크라는 국민은행의 강정원 행장마저 “낮은 비용으로 자금 조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부가가치와 생산성을 높이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또 한번 ‘눈물의 비디오’는 없다=외환위기 직후 1차 금융빅뱅 당시 은행들은 명예퇴직과 지점 폐쇄와 같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한 비상 경영에 나섰다. 당시 직장에서 내몰린 직원들은 1만 명에 육박한다. 당시 옛 제일은행 명퇴자들의 ‘마지막 업무’를 담은 ‘눈물의 비디오’는 세간에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2차 금융빅뱅은 덩치와 영업력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민·우리·하나·기업·외환은행은 경쟁적으로 지점을 늘리고 있다. 신입 행원 채용도 크게 늘리는 추세다. 지난해 395명을 뽑았던 국민은행은 올해는 1000명을 채용할 방침이다. 예대마진 장사가 한계에 다다른 만큼 영업력을 키워 새 수익원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최근 지점 평가에서 이자 부문의 배점은 낮아지고 비이자 부문 수익의 배점이 크게 높아졌다”며 “매일 전국 지점의 등수를 매기는 살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행 간 자산 경쟁도 치열하다. 금융계 관계자는 “막상 금융빅뱅이 다시 시작되면 4등도 안심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최근 기업은행이 하나은행과 자산 순위 4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등 은행 간 자산 경쟁도 다시 불붙고 있다”고 말했다.

 덩치만 키우는 것으로는 해결책이 못 된다. 은행들은 내실경영도 강화했다. 프라이빗뱅킹(PB)에 특화해 부자고객에 주로 치중했던 하나은행은 “큰손들은 이동이 잦은 반면 적은 돈을 맡기는 고객들은 충성도가 높다”며 ‘기반예금’ 확충에 나섰다.

 ◆해외 진출로 돌파구 찾는다=이미 포화상태인 국내에서 경쟁하는 대신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자는 것도 은행권의 전략이다.

 우리은행은 중국 쪽에 승부수를 띄웠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국내 금융사로는 처음으로 중국 현지법인 설립인가를 받았다. 2012년까지 톈진·칭다오·장쑤성·저장성 등 중국 주요 지역에 50여 개의 지점을 추가로 설립, 중국 전역에서 영업할 예정이다.
 국민은행도 현지 영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 현지 영업 준비를 위해 인도네시아·베트남·캄보디아 등에서 현지 직원 12명을 채용했다. 26일엔 중국 광저우에서 이사회를 연다. 국민은행이 해외에서 이사회를 개최하는 것은 설립 이래 처음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중국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캄보디아 프놈펜에 ‘신한크메르은행’(가칭)을 출범한다. 인도에선 뭄바이·뉴델리에 이어 첸나이에 세 번째 지점 개설을 준비 중이고, 베트남에서도 지점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안혜리·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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