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내지 말고 완급가려야”/민자서 반론 나오는 「새정부 개혁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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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수·정책위 업무 중복 성급함 지적/너무 많은 기구 신설 예산낭비 우려
대통령직 인수위와 민자당 정책위가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김영삼차기대통령의 개혁구성과 새정부 행정조직 개편안에 대해 「너무 준비없이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당내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반론이 아직까지는 조직화된 여론도 아니고 일부에서 우려하는 차원이지만 계속 봇물터지듯 쏟아지는 각종 개혁안에 대해 김 차기대통령 본인은 물론 관가나 보수적 일반 국민들간에 뭔가 실상이 잘못전해지고 있거나 추진방향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느낌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인수위나 정책위 관계자들의 반응은 두가지로 엇갈리고 있다. 즉 김 차기대통령의 강력한 개혁의지에 놀란 기득권 세력들이 가진 것을 빼앗길까봐 반발하는 것이라는 시각과,의욕과잉으로 혼란을 초래할 소지에 대해 제동을 거는 조언이라는 주장이다.
김 차기대통령 자신이 연일 대서특필되는 개혁구상에 대해 『실현가능성의 검증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냐』며 짜증내고 있는 것을 보면 현재 진행중인 작업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또 성급한 개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3공부터 6공까지 권력핵심부나 정치권에서 개혁에 참여했던 사람들간에 더 강도높게 나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들의 주장은 상당부분 설득력을 갖고있으며 김 차기대통령도 요즘은 무절제한 개혁홍보가 가져다줄 부담을 걱정하고 있다.
반대로 기득권층의 자위를 위한 반발이라면 김 차기대통령의 개혁이 앞으로 직면해 뛰어넘어야 할 보수층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동안 당내에서 개인적으로 우려하던 주장들이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2일 당직자와 당고문 연석회의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당정책위와 대통령직 인수위의 구체적 개혁구상을 보고받은 고문들은 「밥값을 하겠다」며 정색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만섭고문은 『새정부가 출범한다고 해서 한꺼번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한걸음씩 성실하게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고문은 이어 『한꺼번에 다하려고 하면 무리와 혼란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불안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책위와 인수위의 업무가 중복되고 교통정리조차 안된 인상을 주는 것도 짧은 시간내에 경쟁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급성과 단견에 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고문은 또 김 차기대통령의 공약사항과 관련,『안지키는 것도 잘못이지만 다 지키려는 것도 바보짓』이라며 공약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 것을 충고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완급을 가려 시행하라』고 「완급론」을 주장했다.
다른 고문들도 『각종 규제를 과감히 완화한다고 했는데 규제를 푸는 것은 좋지만 수용태세를 감안해 순차적으로 해야 한다』면서 『오히려 과감히 규제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는 3일 고위당직자 회의까지 이어져 김종필대표는 『대통령 직속으로 많은 위원회를 두겠다는 발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위원회를 만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엔 당3역들도 동의했고 현재 민자당에서 진행중인 개혁시나리오가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준비없는 측면이 있다는데 공감대가 확인됐다.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개혁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신중」과 「완급」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까지 당정책위와 인수위가 내놓은 안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으로 부정방지위·중앙인사위·교육개혁위·행정쇄신추진위·농어촌발전위·사회복지대책위·여성정책특위와 교통기획단·관광발전기획단이 신설된다.
대통령비서실도 사정수석이 폐지되는 대신 정보산업·과학기술·경제3(관광담당) 수석과 농업특보가 신설되고 정부는 사회복지부·해양산업부·산업기술부 등이 신설된다.
이에대해 유승남교수(국민대·행정학)는 『역대정권이 많은 기구를 신설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면서 『기존의 위원회나 정부기관,정부출연기관 등을 활성화 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즉 5공초 사회정화위를 만들어 수사권까지 주었지만 권력형 비리에는 손도 못대고 「올챙이」만 잡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굳이 부정방지위를 만들기 보다는 감사원과 검찰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부정부패 단속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부정방지위가 조사권을 가지려면 검사와 조사요원이 파견돼야 하고 기구가 방대해져 예산소요가 불가피 하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사정수석을 지낸 김영일의원도 『제도나 기구가 없어 개혁이나 부정방지를 못하는게 아니다』면서 『대통령이 개혁의지를 갖고 개혁적 인물을 장관에 임명하면 개혁에 힘이 붙는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당정책위와 인수위에서는 『신설될 위원회 등은 과거처럼 양로원의 구실에 그치는게 아니다』며 『미국에서도 위원회 중심으로 많은 일이 진행되며 개혁을 추진하려면 위원회제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예산문제도 위원회가 가능을 다하면 해산되는 한시기구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 차기대통령도 최근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부정방지위와 중앙인사위 등 개혁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기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총리산하 기구로 두는 등 조정할 의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 부정방지위에 두려했던 기능을 감사원으로 돌린 것도 기존의 기구를 최대한 활성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집권 1년내 개혁을 하지 못하면 개혁에 실패한다』는 얘기도 설득력이 있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완급을 가려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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