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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희망 이야기] "이웃사랑은 부자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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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앙일보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가게' 캠페인을 통해 나눔의 문화 확산에 앞장서 온 중앙일보가 2004년을 맞아 '이~천사 희망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알게 모르게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며 나눔의 문화를 실천해온 분들이 많습니다. '이~천사 희망 이야기'는 따뜻한 마음과 행동으로 주위를 훈훈하게 만드는 분들을 찾아 소개하는 연중 시리즈입니다.

"새벽에 쓰레기를 치우듯 불쌍한 아이들의 어두운 그늘을 다 쓸어내주고 싶습니다."

충남 천안시 성환읍 환경미화원 반장 윤해철(尹海喆.61)씨는 천안에서는 '불우 어린이들의 대부'로 통한다. 올해까지 25년째 이웃사랑을 몸으로 실천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尹씨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의 가난한 소작농가의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운 데다 형제가 많아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졸업 후 서울 등 객지를 전전하던 그는 36세 되던 1979년 초 성환읍사무소 환경미화원으로 취직, 정착했다.

그해 6월, 새벽 작업을 하던 그는 우연히 어떤 집 대문 앞에 놓인 신문 기사를 보았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초등생 朴모군이 두살 위 누나와 함께 70세 할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산다는 내용이었다. 尹씨는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 역시 결혼 후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어려웠던 자신의 지난날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尹씨는 이후 작업 틈틈이 폐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두 달 후 폐품을 판 돈과 과수원에서 일하던 부인(60)의 품삯, 3남매의 돼지 저금통까지 털어 만든 3만원을 朴군에게 전달했다. 자신이 받던 한달 월급(5만원)의 절반이 넘는 돈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불우한 어린이들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한명이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尹씨는 회고했다.

그는 80년부터 당시 월급의 10%인 5천원씩을 떼내 인근의 아동복지시설인 '익선원'(천안시 성거읍)을 돕고 있다.

첫 도움을 받았던 어린이는 이제 강원도 화천군에서 어엿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金모(39.여)씨다.

尹씨는 85년 새해 金씨가 보내온 편지를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 보세요…집안 형편도 안 좋으신데 저를 도와주시는 은혜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날씨가 추워져 하시는 일이 힘드실 텐데 제가 도와드릴 방법이 없어 마음 아파요…."

91년 金씨의 결혼식 때는 尹씨가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다. 金씨가 고아였기 때문이다.

"그 애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갈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눈물 때문에 어떻게 걸어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이처럼 尹씨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익선원 어린이는 지금까지 모두 8명에 달한다. 그는 80년 무렵부터 멀리 경남 산청의 나환자 보호시설인 '성신인애원'도 찾고 있다.

주말이면 나환자 어린이들을 집으로 초청하고, 명절에는 옷.학용품 등 선물을 들고 어린이들을 만나러 간다.

아버지의 선행에 감동받아서였을까.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리어카를 밀던 장남 재필(34.천안시청 건축과 근무)씨도 10여년째 대구의 한 나환자시설과 한국복지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고교 때 시작한 헌혈이 현재 1백60회를 넘었다. 부인도 쉰살이 넘도록 과수원 일 등을 하며 남편의 선행을 거들고 있다.

尹씨는 요즘 일요일만 되면 자전거를 탄다. 자신이 건강해야 불우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요즘 걱정이 많다고 했다. 오는 6월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아이들을 도울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일용직 신분이어서 공무원 연금은 물론 퇴직금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尹씨는 지난해 12월 4일 사단법인 자연사랑으로부터 서울시장상, 30일엔 천안시장 표창을 받았다.

"2남 1녀에게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물려준 게 유일한 유산인 것 같습니다." 새해 벽두 尹씨의 환하게 웃는 표정이 아름답다.

천안=조한필 기자 <chopi@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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