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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빌딩 ‘그림자’ 살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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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서울시는 ‘4대문 안 불허방침’에 따라 중구 세운상가 지역에 220층을 허용하지 않는 반면 잠실·상암·용산엔 100층 이상 초고층을 허용하기로 했다. 수년간의 논란 끝에 내린 이번 결정은 그 동안 지켜온 ‘초고층 금기’를 깨는 역사적 의미를 띠고 있다. 이로써 서울은 바야흐로 ‘초고층 시대’를 맞게 되었다.

 지난 수년간 줄줄이 발표된 건축물의 높이를 보면 그야말로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 질주와 같을 것을 느끼게 한다. 불발로 끝났지만 도곡동 삼성본관 102층, 제2롯데월드 112층, 상암DMC 130층, 용산국제업무지구 150층, 중구 세운상가 지역 220층으로 건물의 높이가 끝을 모르고 치솟아 왔다. 건교부에서는 심지어 1000m 넘는 (200층 이상) 극초고층 빌딩을 1000일 안에 지을 수 있는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고 하니 이것이 현실화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초고층 건설이 이렇게 경쟁적으로 추진되는 이면에선 투기 세력의 부동산 논리를 위장하고 있는 ‘초고층 예찬론’이 널리 유포되고 있다. 일종의 기술 유토피아주의와 같은 초고층 예찬론에 의하면, 초고층 건축은 세계적인 추세로서 도시의 탁월한 랜드마크를 만들어 주고, 도시 경쟁력을 강화해 주며, 토지의 집약적 이용을 도모케 하고, 오픈 스페이스의 확보로 도시환경 개선 등에 획기적인 도움이 된다고 한다. 현대의 도시들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가능성이 초고층 건축에 담겨 있다는 것이 초고층 예찬론자들의 신앙적 믿음이다.

 초고층 건물은 강한 빛을 발산하지만 동시에 도시 전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가령 초고층 건축은 도시 경관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시키고 높은 고정시설비용으로 도시의 미래 적응에 큰 장애물이 되며, 한 장소로 인구와 활동을 과도하게 집중시키고 특정 계층을 위한 특권적 폐쇄 공간을 만들게 된다. 무엇보다 초고층 건물은 활동단위당 에너지 사용을 높이고 거대한 구조물로 인해 도시 생태계를 교란하며 도시 열섬현상 등의 환경 문제를 불러온다. 안전에 취약한 것도 초고층 건물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면 빛과 그림자를 균형적으로 봐야 하지만, 초고층 찬양론은 개별 건물이 발하는 빛만 일방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어 위험스럽기 그지없다. 초고층 찬양론이 이렇게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것은, 생명공학 담론이 국민정서와 결합해 빠르게 유포되었듯, 초고층에 관한 기술 유토피아 담론이 사회적으로 걸러지지 않은 채 국민을 쉽게 미혹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초고층 건축은 도시의 독이 될 수 있어 그만큼 고도의 도시계획 처방이 요구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된 도시의 정체성을 파괴한다 해서 유럽의 도시 계획에서 초고층은 기피 대상이다. 우리도 타이베이의 세계 최고층 건물에서가 아니라 파리의 아름다운 저층 건물로부터 더 많은 지혜를 배워 왔으면 한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