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재외 국민의 선거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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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헌법재판소는 재외 국민과 국외 거주자에게 선거권을 제한한 공직선거법과 국민투표법의 관련 규정에 대해 헌법에 보장된 재외 국민의 선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이러한 결정은 재외 국민의 선거권 제한이 합헌이라는 1999년의 결정을 8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그 주권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선거임을 감안할 때 국민에게 부여된 선거권은 가장 본질적인 기본권이다.

돌이켜 보면 20년 전 6·10 항쟁의 결실로 탄생한 현행 헌법은 국민의 본질적 기본권인 바로 그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즉 현행 헌법은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도록 했고, 선거권을 비롯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충실하게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서 헌법재판소 제도를 도입했던 것이다.

 그동안 헌재는 사안에 따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헌재는 그저 장식품에 불과한 줄로만 알았던 헌법 규정들이 결코 국민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살아 있는 규범임을 실증해 보임으로써 국민의 헌법 의식 고양과 헌법재판제도의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

 재외 국민들의 선거권 제한과 관련해 헌재가 1999년 당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 근거는 북한 주민이나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선거권 행사 가능성과 선거 공정성 확보의 어려움, 선거관리상의 기술적인 문제점 등이었다.

 그러나 이번 헌재의 전원재판부에서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북한 주민이나 조총련계 재일 동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추상적 위험성만으로 재외 국민의 선거권 행사를 전면 부정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고, 선거 기술상의 어려움은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극복할 수 있다며 8년 전의 결정을 변경했다.

 이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행 헌법에 기초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보다 충실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은 길지 않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 집권 연장을 위한 방편, 또는 쿠데타 세력의 정권 장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여러 차례 개정되고 뒤틀려 왔다.

 하지만 현행 헌법은 6·10 항쟁의 결과 온 국민의 열망을 담아 탄생했다. 그런 만큼 우리 사회의 정치적 역동성에 비추어 이례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벌써 20년 가까이 한번의 개정도 없이 장수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헌법 개정에 관한 논의가 있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우리 국민은 현행 헌법에 익숙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헌재가 국민 생활과 직결된 여러 사안에 대해 ‘합헌이나 위헌, 또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생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의 헌법 의식이 그 정도로 높아졌다는 증거다.

 우리는 이제 재외 국민 700여만 명의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화·개방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그런 의미에서 재외 국민에게 선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헌재의 이번 결정은 의의가 크다. 헌재가 정한 선거법 개정 시한인 내년 말까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관련 입법 절차를 조속하고도 충실하게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현행 헌정 질서에 20년 가까이 익숙해져 온 국민들은 헌법 규범이 결코 장식품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만큼 국민들은 앞으로 제기될 각종 현안에 대해 헌재가 모든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결정을 하는지를 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윤상일 대한변협 공보이사·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