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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수정 이대론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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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희의료원에서 폭로된 인공수정 과정의 비리는 의료윤리와 우생학,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경악과 개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불임환자에게 인공수정시술을 하면서 정자제공자의 각종 질병이나 유전인자에 대한 정밀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은 가장 기초적인 시술의 전제조건을 무시한 무책임한 일이다. 비록 서로 사랑하는 남녀사이라 해도 어느 한쪽의 가계나 본인에게서 2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만한 인자가 발견되면 결혼을 삼가는 것이 우리사회의 상도가 아닌가. 하물며 부득이한 사정으로 정체모를 상대로부터 정자를 받아 인공수태를 하는 입장에서는 시술의사의 엄밀한 선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막중한 책임을 진 의사가 중개인이 갖다주는 정자를 검사한번 거치지 않고 수태시술을 했다는 것은 의료인이 갖춰야할 최소한의 양식마저도 저버린 무책임한 행동이다.
또한 한사람의 정자를 여러명의 불임시술에 사용하는가 하면,공급된 정자가 없을 경우 주변에 있는 의사들의 정자를 채취해서 시술했다고 한다. 이 시술행위 자체가 갖는 의료윤리문제는 고사하고 혈통과 가계의 혼란이 초래하는 인륜파괴의 심각성을 의사들은 생각해본 적이나 있는가. 개방의 극치를 달리는 미국같은 나라에서도 한 의사가 자기정자를 여러 불임환자에게 시술했다해서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형사책임까지 진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개나 돼지같은 짐승도 우수한 품종은 보존을 위해 혈통을 가려가며 수정을 시키는 마당에 하물며 인간의 생명을 이처럼 무도하게 다룬다는건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무분별한 인공수정시술이 비단 경희의료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상당수의 병원에서 보편화된 현상이라는게 더 큰 문제다. 지난 50년대에 국내에 도입된 인공수정으로 지금까지 1만5천명 이상의 태아가 태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첨단의료기술의 발달로 직접적인 인공수정뿐만 아니라 체외수정이나 대리모출산 등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임신과 출산이 아닌 인공적인 기술에 의존하는 수태와 출산에는 인간의 잘못된 욕망과 작위에 따른 사술이 작용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 개연성 또한 더욱 높아지고 있다. 윤리의식이 마비되는 사회에선 그 역할을 법규가 대신할 수 밖에 없다.
인공수정에 이용되는 정자의 관리와 사용범위 및 자격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한다는 차원에서 채취된 정자나 난자의 매매행위는 금지하는게 마땅하다. 또 앞으로 가능해질 유전자의 조작이나 복제인간의 생산 같은 첨단생명공학분야에 대해서도 예상되는 사태를 사전에 제어할 수 있는 과학자들의 윤리강령이나 규제법규의 마련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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