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위기' 확인 … 3년 연속 하락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평가 결과 분석해보니

이번 조사에 포함된 25개 파워조직은 대기업.행정부(권력기관).사법부.정당.시민단체. 이익집단 등 6개 영역을 대표하고 있다.

이들 6개 영역은 각각 사회적으로 중요한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하면서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집단이다. 협치(協治)로도 불리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주요 행위자들이기도 하다.

최근 3년 연속 조사에서 이들 6개 집단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과 신뢰도를 보여준 집단은 삼성.현대차.LG.SK 등 대기업으로 나타났다. 두 지표에서 모두 일관되게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국가기관 대신 대기업에 대한 영향력과 신뢰도가 계속 높게 나온다는 사실은 국가-시장 관계와 관련해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픽 크게보기

대기업 다음으로는 대법원.헌법재판소 등 사법부가 영향력과 신뢰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청와대.검찰.경찰.국세청.국가정보원 등 소위 권력기관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권력기관에 대한 최근 3년간의 영향력과 신뢰도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향력과 신뢰도에 대한 평가 차이가 6개 영역 중 권력기관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권력기관이 영향력은 크지만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신뢰를 국민으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나 이익집단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서로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전반적으로 정체 혹은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다.

영향력.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낮게 평가받은 집단은 한나라당.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민주당 등 정당 그룹이다. 3년 연속 일관되게 최하 점수를 받았다.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3년간 정당의 영향력과 신뢰도에 대한 평가가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조사에서 4.8점이었던 정당의 영향력 점수가 2006년 4.1점, 2007년 3.9점으로 계속 낮아졌다. 정당의 신뢰도 역시 2005년 4.4점에서 2007년엔 3.6점으로 떨어졌다.

한편 이념적 차원에서 집단 간 영향력과 신뢰도를 비교한 결과, 진보 집단에 비해 보수 집단의 영향력과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왔다. 국민은 지난 3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진보 집단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약화됐다고 생각하는 반면, 보수 집단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식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집단과 보수 집단 간의 신뢰도에 대한 인식 정도는 2005년엔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06년엔 진보 집단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그 차이가 커졌다. 이번 조사결과에서도 '진보의 위기'가 다시 확인된 셈이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

매년 낮아지는 신뢰도

파워조직의 역할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해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파워조직 순위와 추세는 지난해와 비슷하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신뢰도가 영향력보다 낮았다. 또 영향력과 신뢰도 두 지표 간 평균 차이(0.44)가 지난해보다 커졌다. 파워조직들이 영향력만큼 신뢰를 쌓는 일에 소홀했음을 보여 준다. 사회적 불신이 점점 높아졌고 조직 간 갈등이 더 심각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림에서 보듯 파워조직들은 대개 1분면과 3분면에 몰려 있다. 영향력과 신뢰도가 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긍정적인 평가 영역에 해당하는 1분면 조직에는 대기업과 사법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에 사법기관이 속해 있다는 것은 국민이 국가의 최종 결정을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2분면에 속한 조직이 없다는 것은 영향력에 비해 신뢰도가 높은 기관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 파워조직 중에선 '과소 대표' 되는 곳이 없음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조사 대상 절반이 영향력과 신뢰도가 낮은 3분면에 속해 있고 특히 청와대.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 이익단체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익단체 중에선 보수성향 단체가 진보성향 단체보다 다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4분면은 영향력은 높지만 신뢰도가 낮은 조직이 포함돼 있다. 한나라당이 여기에 속해 있다. 검찰과 경찰도 마찬가지인데, 법 집행에 대한 두 조직의 권위가 영향력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음을 나타낸다.

올해 조사에서도 민주당(통합이전).민주노동당.열린우리당 등 정당들이 가장 낮게 평가됐다. 또 이들 정당에 대한 영향력과 신뢰도는 지난해보다 더 떨어졌다. 정당에 대한 평가 수준은 정당들의 인기도와 거의 일치한다.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신뢰도에서 꼴찌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존립 이유와 관련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주요 파워조직을 조사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반에 가까운 12개 조직이 영향력과 신뢰도 양쪽에서 중간(5점) 이하로 평가됐다. 두 지표에서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된 조직은 9개뿐이며 그것도 대기업을 제외하면 국가기관은 5개뿐이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

어떻게 조사했나
대선 감안해 선관위 추가
0~10점 응답 결과 평균 내

우리 사회 파워조직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평가한 이번 여론조사는 동아시아연구원 시민정치패널팀이 질문 항목을 설계하고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전화조사와 자료 처리를 담당했다.

전통적 권력기관.입법부.사법부.시민단체.이익단체.언론사 등 33개 파워조직에 대해 평가토록 했다. 특히 올해는 12월 대선을 감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추가됐다. 영향력 조사는 '전혀 영향력 없음'을 0점으로 해 '매우 영향력 높음'의 10점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신뢰도 역시 '매우 불신'(0점)에서 '매우 신뢰'(10점) 사이에서 응답하도록 해 평균 점수를 산출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지상파 방송과 주요 종합 일간지 등 8개 언론사는 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나 분석에선 제외했다. 조사기관인 중앙일보가 평가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 분석 대상은 25개 조직이다.

33개 조직에 대해 영향력과 신뢰도를 각각 물을 경우 응답자는 66개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전화조사를 통한 최대 허용 질문 개수가 15~20개임을 감안해 조사 대상 조직을 세 묶음으로 나눠 사흘간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해석할 때 시차 등의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 비표본 오차를 감안해야 한다.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동아시아연구원(EAI) 시민정치패널팀

강원택(팀장.숭실대), 김병국(EAI 원장.고려대), 이현우(서강대), 이내영(EAI 여론분석센터 소장.고려대)교수, 정한울(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이상협(EAI) 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