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 바른뜻 밝히는 이종철 민속박물관장(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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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설은 새해 신명 다지는 원일”/휴가 아닌 「공동체 정서부활절」/전통계승 고향문화 알기서 출발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어린시절 추억속의 설날은 항상 그 넉넉함으로 우리를 가슴설레게 하던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정이 듬뿍 담긴 설날」은 이미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나날이 도시화 되고 산업화 되는 우리 삶의 살풍경함은 설날의 의미를 단지 며칠 푹 쉴 수 있는 휴일정도로 축소시킨다. 설날의 「작은 휴가화」현상은 설날 고유의 민속의례가 점차 사라져 가는 현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서구적인 놀이문화에 밀려 민속문화는 날로 위축되어 가고 있으며,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 현상은 심각하다. 생활방식의 서구화에 따라 이러한 추세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는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지적이지만 자칫하면 문화적 패배주의로 귀결될 위험성을 안고있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 민속학자이자 국립민속박물관장인 이종철씨를 만나 민속문화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설날을 민속문화적인 측면에서 설명해 주시지요.
▲설날은 원래 한자로 원일 또는 세수라고 쓰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신일이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이날을 근신하고 경거망동을 삼가며 새로 시작되는 1년을 바르게 지내자는 뜻을 담고있다고 보았음을 말해줍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 전통에는 설날에 이웃과의 화합을 도모하는 아름다운 풍속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풍속은 크게 보아 조상숭배적 성격과 공동체 신앙적인 성격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재로는 전자인 조상숭배만이 겨우 명백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지요.
­지금 우리 설날풍속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경쟁의 강도가 날로 세어져 그런지 모르겠지만 설날연휴도 새해를 맞이해 이웃과 함께 보람찬 미래를 설계한다는 본뜻은 잊혀진채 휴식 내지는 휴가의 의미만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휴식을 취한다는 것을 나무랄수야 없겠지만 그 휴식이 미래지향적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결국 설날 민속문화가 가진 공동체적인 정서가 소멸되고 있다는 얘기인데 이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우리 민속에는 정초에 정지·마당·장독 등의 잡귀 잡신을 몰아내고 명과 복을 비는 매귀걸궁·마당밟이라 부르는 향토연희가 있습니다. 이 행사는 지난 1년의 쌓였던 피로를 풀어주고 더 나아가 새해를 신명나게 맞이하도록 마을사람들을 묶어주는 한판 잔치였습니다. 전통사회의 여러 갈등들이 이러한 행사를 통해 극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소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속문화의 보존도 이러한 공동체적인 정서의 부활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우리 경제가 삐걱거리고 각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잃었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이 나야 일도 잘하는 것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인데 사람들을 원자화시키는 서구적인 오락이 범람하다 보니 「신명」또한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사람들이 신바람나 일하기 위해서도 공동체적인 정서가 빨리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민속문화가 다른나라의 그것과 다른 점은.
▲농경민족답게 귀소본능이 유달리 강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땅이나 고향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합니다. 자기 고향에 대한 자부심 자체는 대단히 건강한 정서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다른 이해관계와 얽히면 지액패권주의로 흐를 위험도 있습니다. 이를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고향에 대한 애착을 「문화적 정체성」의 확인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민속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문화는 원래 살아움직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어야만 문화의 보존이 가능한 것이지,관이 나서서 억지로 보존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전통문화라고 해서 무조건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성장위주의 삶을 살면서 우리가 등한시했던 것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 농수산물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고향쌀 먹기 운동」등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시급한 것이 「고향문화알기 운동」이 아닐까요. 자기 고향의 문화전통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민속문화의 보존이라는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속박물관 이전개관 준비로 바쁘신걸로 알고있는데 어느정도 진척되고 있습니까.
▲현재 2월 중순 개관을 목표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략 전체의 70% 정도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모두 3관·15개 전시실 규모로 개관될 것입니다. 집에 친지가 찾아오면 가족앨범을 내놓는 관습이 있지않습니까. 저는 민속박물관이 우리 문화의 「앨범」구실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화격변기의 자료에 비중을 두어 전시할 예정입니다. 특히 「한민족 생활사」관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우리 생활문화의 변화를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어 젊은이들에게 우리 문화의 뿌리를 알려주는 기능을 하리라 봅니다.<임재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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