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강소정부와 후대정부를 넘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작은 정부인가 큰 정부인가는 나라마다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수주의자는 정부가 사회문제 개입을 축소하고 효율적인 작은 몸집을, 진보주의자는 사회적 약자에게 후한 음식인 후궤(厚饋)를, 관리에게 많은 자리와 넉넉한 대우인 후황(厚況)을 보장함으로써 몸집이 커지는 것을 허용한다.

김대중 정부는 진보적 성향이 뚜렷하였지만, 정부 인력을 30% 가까이 줄였다.진보적 믿음보다는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정부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는 인식을 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문제보다는, 늘리고 교과서적인 혁신에 매달리고 있다. 이래선 국가적 문제가 효과적으로 풀릴 리 없다.사회적 약자의 불만은 높아만 가고, 주요 정책문제 해결은 천연(遷延)되고 있다. 부동산이나 교육문제 등에서 보는 것처럼 정부의 사전 대비 능력은 취약해졌다.

어떤 정부를 택하느냐 하는 것은 국민이 정한다. 다시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아마 지금보다도 더 큰 인력과 예산을 쓰는 정부를 만들려 할 것이고,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약간 줄이거나 동시에 추가적으로 늘어날 분야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시도할 것이다.

정부 규모 논쟁은 이미 결론이 났다. 우리나라 광의의 정부는 예산·인력·규제를 포함한 정부의 영향력 등으로 볼 때, 영미권 정부에 비하여 큰 정부다. 특히 ‘산하기관’이 너무 비대해졌다. 오직 유럽의 작은 몇 나라나 일본이 우리보다 클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논쟁을 넘어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층부 국가로 발전하는 데 필수품인 정부의 속성(DNA)을 어떻게 바꾸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첫째는 정부의 정책문제 해결능력이다. 그동안 상층부에 정치성 위원회를 떠받들고 부처마다 연구소를 만들어 귀찮은 연구를 시키는 동안 고위 관료의 정책개발 역량은 취약해졌고, 전문성은 사회문제를 앞서지 못하고, 책임은 분산됐다. 당면하는 사회문제는 유례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앞이 깜깜한 원천기술 개발, 노령사회의 대비, 그리고 럭비공 같은 남북관계 관리 등은 선진국 모방이나 따라잡기(catch-up) 정책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중대(中大) 규모의 국가들과 겨루어 앞서기(head-ahead) 위해서는 정부의 문제 해결 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다. 국가적 과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수완 있는 역량정부(competent government)가 필요하다.

둘째는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사회적 갈등의 원천이 되고,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점을 잘 보아왔다. 최근 실시된 국민의 인식조사에 따르면, 우리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외국에 공개하기 부끄러운 수준으로 낮다. 게다가 정책관리방식은 무성의하고, 한 정권의 조급한 정책방향 선회에 앞장서 깃발을 들고, 국민의 입장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미화하는 거친 목소리를 가진 인사들이 정론을 질타한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진보정권이 들어설 때도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도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정부 관료들이 공익상실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분열을 막는 창의적인 방안을 개발해 정치적 충동을 완충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상층부 관료들은 자신의 승진시기를 놓칠세라 정권에 과잉 동조하는 흐름 속에서 고민만 하고 있다.

퇴계는 ‘정부에 있는 사람은 즐거운 것을 삼가야 한다(朝立當戒喜事)’고 했다.조직을 늘리고, 승진하고, 지원을 핑계한 통제를 즐기고, 국민을 불러서 ‘한 소리 치는’ 관리의 즐거움은 백성들에게는 고통이고 분통이다. 오직 국민의 만족을 기준으로 시민에 충직한 정부,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정부(confidential government)를 만들어야 한다. 그저 효율적이고 민첩한 추종자(fast follower)만으로 정진하는 정부를 만들 수 없다.

서울대 공과대학·행정대학원 졸업, 미국 하버드대 정책학 박사, 한국 행정학회 회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현)

이달곤 서울대 행정대학원·정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