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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숙 오페라’ 뮌헨을 사로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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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씨의 첫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6월30일 오후 독일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다. 세계 오페라의 중심으로 손꼽히는 이 극장에서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 것은 고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후 처음이다.

1972년 여름 열 한 살의 한 소녀는 신문에서 서양 여성이 한복을 입고 노래하는 낯선 모습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뮌헨 올림픽 개막 축하공연으로 바이에른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던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한 장면이었다. 그때 그 소녀는 바로 그 장소에서 자신의 첫 오페라가 초연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2007년 6월 30일 저녁.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진은숙의 단막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무대에 올랐다. 지난 4월 초 인터넷 예매가 시작된 후 순식간에 초연 티켓이 매진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현대 오페라 공연으로는 흔치 않은 관심을 받은 터라, 초연 무대는 일종의 흥분감 마저 느끼게 했다.

20세기 수많은 철학자, 작가,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한 루이스 캐럴의 원작에다 중국계 미국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본, 일본계 미국 지휘자 켄트 나가노의 지휘와 오페라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칠순의 귀네스 존스 컴백 무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이런 사실에 더해,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자신만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음향 세계로 주목받는 작곡가 진은숙의 음악적 상상력이야말로 이 오페라를 끌고 가는 힘이었다. 특유의 꿈결 같은 아우라로 반짝이는 사운드, 다채로운 악기 배합에 사이사이 귀를 붙잡는 ‘비르투오소한 패시지(대가의 면모가 번득이는 음악적 구절)’,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등장하는 음악적 패러디들. 2시간 내내 앨리스와 함께 펼쳐지는 그 무궁무진한 청각적 이미지들은 진은숙의 거장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비스듬히 세운 무대 위 아홉 개의 구멍에서 앨리스와 연기를 맡은 배우들이 드나들고 가수들은 무대 앞줄에 앉아 노래하는 아힘 프라이어의 연출 역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대가 비스듬하다는 특성상 역동적인 움직임보다는 정적인 느낌이 강해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음악을 극대화시키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단순한 무대를 다채롭게 변화시킨 조명 끈의 사용이나 애벌레로 분한 베이스 클라리넷 독주 장면, 거북 스프를 노래할 때 수십 명의 어린이 합창단이 머리에 냄비를 쓰고 등장한 것 등 인상적인 대목도 많았다.

오페라는 확실히 현대음악 앙상블을 위한 곡들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 그동안 진은숙은 주로 관현악곡을 썼지만 성악을 포함한 앙상블 역시 그녀의 주특기였다. 출세작 ‘말의 유희’나 재작년 초연된 ‘소프라노 가수’ 등에 이미 루이스 캐럴풍의 넌센스나 유머러스한 풍자를 담고 있었으니,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지금까지 그녀가 탐색해 온 소리 세계가 결산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리라.

뮌헨=음악평론가 이희경(서울대 강사·음악학)

◆진은숙씨=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85년 독일 함부르크음대에 유학해 세계적인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를 사사했다. 2001년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초빙 작곡가로 위촉됐고, 2004년 ‘바이올린 협주곡’이란 작품으로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2004년)을 받았다. 자난해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로 초빙됐다. 그의 언니는 음악평론가 진회숙(51)씨, 동생은 중앙대 진중권(44)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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