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도입 등 당초 개혁취지 식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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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중앙SUNDAY는 교육 수장을 지낸 9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다. 내신 파동을 계기로 대학 자율화와 입시개혁 논쟁이 촉발된 상태에서 한국 교육의 갈 길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사실 역대 교육 수장 가운데 후한 평가를 받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잘 알고 그 해법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교육현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적지 않다. 인터뷰 내용을 분석한 결과 9명 중 6명은 정부가 획일적으로 내신 반영을 강요하는 것은 대학 자율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견해를 보였다.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는 교육 수장을 두 번 지냈다. 최근 논란이 된 2008학년도 입시안은 그가 두 번째 재직할 때인 2004년에 세운 것이다. 그런 그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2008 입시개혁안이 전제했던 두 가지 방안 중 지금 어느 하나도 제도화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입시안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로 ‘교육발전협의회’와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을 제시했으나 퇴임 후 전자는 식물화 과정을 밟았고 후자도 불발이었다는 것이다.

교육발전협의회는 2008 입시안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고교와 대학, 학부모, 시민사회, 언론, 그리고 정부 인사가 참여하는 협의체다.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이 전문가를 채용해 학생의 성적, 개인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 판단케 하는 제도다. 그는 “퇴임 전 20명으로 구성된 협의회를 출범시켰는데 그것이 2년 이상 꾸준히 활동했다면 올해쯤 2008 입시개혁안이 꽤 쓸모있는 준거 틀로 정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교육부는 이 협의체를 전혀 가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때 교육개혁위원회(위원장 이명현)가 ‘5ㆍ31개혁안’을 내놓았다. 당시 교육부 장관은 김숙희씨였다. 식품영양학자 출신인 그는 장관 발탁 후 서울대 사범대 교수였던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신일 부총리가 사범대 교수 할 때 나한테 와서 ‘교육은 자율로 맡겨야 한다, 자율로 크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며 “자율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제도가 있거나 하면 그이(김신일)가 그게 아니라고 충고를 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그런데 지금 (김 부총리가)하는 것은 자율의 정반대로 나가고 있지 않으냐”고 했다. 이어 김 전 장관은 “교육부가 정치와 결탁이 되면 개혁을 못 한다”며 “대학이 자기가 가르칠 학생을 뽑는다는데, 어련히 알아서 자기의 데이터를 갖고 할 텐데, 대통령이 그것까지 개입해야 하느냐”고 덧붙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를 맡았던 이상주 전 부총리는 “정부가 내신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대학으로서도 고교별ㆍ지역별로 학력 차이가 엄연히 나는데 내신만 높게 반영하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교사들이 온정주의에 젖어 학생들에게 성적도 후하게 주고 문제도 쉽게 내고 있다”며 “내신 성적으론 대학이 학생들을 평가할 만한 정보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전 부총리는 “연 2~3회 정도 정부가 주관하는 대입 전국학력평가로 입시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SUNDAY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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