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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2)|대중매체·첨단기술 차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대중매체와 첨단 테크놀러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일상의 삶이 녹아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표출하려는 일련의 실험이 90년대 들어 국내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80년대 후반부터 시도돼 최근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그 흐름의 동력원은 60년대에 태어나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산업사회로 편입된 70∼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른바 신세대들의 포스트 모던한 감성이다. 컬러TV와 대중문하·대중소비로 요약되는 산업사회의 사회·경제·문화적 조건이 이들의 감수성을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구별되게 바꿔 놓았던 것이다.
이들이 주로 차용하는 수단은 신문·잡지·만화·애니메이션·사진·TV·네온사인·팩시밀리 등 대중매체와 비디오·컴퓨터·홀로그램·레이저·멀티비전·멀티슬라이드 같은 첨단 테크놀러지다.
여류화가 조경숙씨는 여성잡지 등에 빈번히 나타나는 여체를 강조한 광고와 똑같은 포즈를 스스로 취한 사진을 그 광고물과 컴퓨터로 합성시켜 대중매체가 대량생산하는 퇴폐문화의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사진작가 성능경 씨는 가족사진첩에나 꽂혀 있어야 할 아이들의 스냅사진을 굳이 끄집어내 전시장 벽면에 가득 설치한다. 그것도 모자라 잘못된 사진을 사용하기도하고 『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며 일부러 사진을 망치기까지 한다.
이들 신세대 미술운동의 지향점은 ▲표현영역의 확장 ▲소통범위의 확대 ▲미술의 토틀화(장르 해체) ▲예술과 삶의 일체화로 요약할 수 있다. 즉 대중적 시각 이미지와 사물, 그리고 첨단테크놀러지를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 삼아 전통적 회화와 조각이 가져다 줄 수 없는 미적 체험을 가능케 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며, 나아가 생생한 현장감과 리얼리티를 통해 예술과 일상적 삶의 경계를 허물자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김환영·박불똥·김복진·서숙진·신지철·조경숙(이상화가)·박혜준(디자이너), 이지누(사진작가)·정기용(건축가)등 이 참가해 압구정동문화를 시각적으로 분석·조명한「압구정동-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전」이 그 좋은 예다.
이 전시회의 참여 작가들은 일체의 붓 작업을 배제시킨 채 광고이미지를 컴퓨터로 합성하거나 멀티슬라이드·비디오·사진·설치작업 등을 통해 한국적 자본주의의 천박한 구조를 그 뿌리로 하는 압구정동 문화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신세대 미술운동에 대한 미술 인들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다.
월간 미술잡지『가나아트』최근호가 지난해 개인전을 1회 이상 가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작가들은 대중 매체를 이용한 미술작업과 탈 장르 현상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되 대중과의 소통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응답했다.
또 많은 평론가들은 신세대의 작품에 대해「혼란스럽다」「서구 사조의 무비판적수용이다」「새로운 매체가 던지는 충격에 주로 의존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신세대의 미술운동이 1회 성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는 신세대의 미술운동이기성의 낡은 사고와 감각에 대해 도전적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형식과 깊이 없는 내용의 괴리를 뛰어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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