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쇼핑몰에서 길을 잃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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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25면

얼마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보낸 메일을 훑어보다가 1700원짜리 레이서백 탱크톱, 그러니까 끈나시를 발견했다. 1700원도 놀라운데 배송비 포함이란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중국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대세가 되면서 저가품 시장은 전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워졌다. 그래도 원가가 300원은 될 터이니 택배 계약을 아무리 저렴하게 맺었더라도 남는 게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재고 처리라든가, 뭔가 소비자로서는 알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편이지만 옷이나 신발은 오프라인을 이용한다. 평균보다 키가 작고 발은 넓적하고 머리는 크기 때문이다. 또 옷을 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디자인보다도 오히려 소재나 바느질이기 때문에 직접 만져보고 확인하지 않고는 아무래도 불안하다.
하지만 1700원이라니? 이 놀라운 가격 앞에서 자잘한 것들은 대충 모른 척해도 괜찮지 싶다. 게다가 지금 주문하려는 것은 정말 기본적 모양이라서 괴상하려야 괴상하기가 쉽지 않은 물건인 것이다. 물론 원단이 영 후줄근하다든가, 한 번만 입으면 실밥이 다 뜯어진다거나 할 수는 있다. 그래도 이 가격이면 동네 짱분식에서 떡꼬치 사왔는데 기름에 온통 절어서 먹다 만 것보다 조금밖에 안 아까울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라면 오프숄더 티셔츠나 시스루 튜닉에 받쳐 입으면 된다.
고르다 보니 왠지 흥이 나서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넣고 싶었지만, 꾹 참고 회색으로 한 벌만 주문했다. 배송도 빨랐다. 예상과 달리 우편이 아닌 택배로 바로 다음날 도착한 옷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인사말로라도 촉감이 좋다고는 못하겠지만 못 입을 정도는 아니고 두 번이나 빨았어도 그다지 늘어나지도, 보푸라기가 일지도 않았다. 바늘땀이 듬성듬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세탁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다. 흠이라면 피팅이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어깨가 좁고 팔뚝이 가늘고 가슴은 납작한 편인 내게도 겨드랑이 부분이 너무 꼭 껴서 조금 답답했다.

정은지의 쇼퍼홀릭 다이어리

쇼핑의 성과를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가격 대비 성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주문은 성공이다. 나의 회색 끈나시는 1700원의 가치가 충분했다. 내친김에 색색 가지로 사볼까 하는 생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다음 날 다른 쇼핑몰에서 날아온 메일이다. 오늘만 특가 900원 끈나시! 내기해도 좋지만 같은 물건이다. 단 이번에는 배송비 2500원이 추가된다. 내가 고뇌에 빠진 것은 먹색과 분홍색과 감색으로 세 벌을 주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번 쇼핑몰에서는 5100원, 이번에는 5200원이다. 그런데 여기에 1000원만 추가해 6100원이면 이번 쇼핑몰에서는 네 벌을 받을 수 있다. 신이 나서 다른 색을 더 고르려니 마음에 드는 게 없다. 게다가 엄청나게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닌 옷을 색색 가지로 다섯 벌씩이나?
나는 결국 주문하지 못했다. 한 벌 정도는 더 필요한 게 사실이니 1700원짜리를 하나 더 사는 게 정답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이미 김이 새어버린 것이다. 쇼핑에는 역시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제로의 영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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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지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일한 경험으로 쇼핑의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된 자유기고가로 『모피를 입은 비너스』 『피의 책』 등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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