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추가협상 타결 득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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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이 협상의 큰 틀을 흔들지는 않았다. 민감한 자동차.개성공단 원산지와 관련된 돌출 변수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의회를 의식해 미 행정부가 강력하게 요구한 노동.환경 분야의 수정 제의는 대부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반대 급부로 한국은 비자 문제(전문직 비자 쿼터 및 일반인 대상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미 행정부의 협조 약속을 받았고, 의약품 분야에선 복제약 시판 허가.특허 연계를 18개월간 유예하는 실익을 챙겼다.

◆신(新)통상정책은 수용=정부는 16일 미국이 제안한 노동.환경 등 신통상정책을 검토한 결과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노동 분야에서는 복수 노조 항목만 다르다"며 "복수 노조도 이미 3년 내에 도입하기로 한 만큼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노동.환경 규정을 위반할 경우 일반분쟁 해결 절차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다소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기존 협정문에는 특별분쟁 해결 절차를 적용해 최대 1500만 달러의 벌과금을 부과하고, 이 돈을 피제소국(위반국)의 노동.환경 여건을 개선하는 데 쓰도록 돼 있었다. 추가 협상에선 앞으로 노동.환경 기준 위반 사안에 대해 특혜관세 중단 등 무역보복 조치를 내릴 수 있고 벌과금도 상대국이 가져가도록 됐다. 벌과금 상한선도 없다.

이 때문에 25~27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2차 추가 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노동.환경 분쟁 절차 남용을 막기 위해 근거 규정을 삽입하자고 강하게 요구했다. 결국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부속 서한에 ▶분쟁 당사자는 국가로 한정하고 ▶분쟁에 앞서 정부 간 협의를 의무화하며 ▶무역.투자에 영향이 있을 경우에 한하고 ▶무역보복은 피해액을 넘지 못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이다.

◆'현찰' 주고 '약속어음' 받아=다국적 제약회사를 견제하는 미 민주당의 요청에 따라 에이즈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면 지적재산권에 구애받지 않고 복제약을 생산하는 규정도 포함됐다. 투자자 국가소송(ISD)에서 당사국이 필수적 안보를 주장할 수 있도록 했고,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항만 안전'도 필수적 안보로 인한 예외 대상임을 확인했다. 정부 조달 참여 기업에 노동조건 준수를 요구하는 내용도 미국의 제안대로 반영됐다. 이들 항목은 미국이 요구했지만 한국에 유리한 측면도 적지 않다.

한국은 의약품 특허 연계 이행 의무를 협정 발효 후 18개월간 유예하도록 끌어낸 것이 눈에 띄는 실익이다. 미국 제약회사가 특정 약품을 국내에 시판하기 위해 특허 신청과 시판 허가를 동시에 낼 수 있고, 이때 우리 식의약청이 일정기간 해당 약품의 복제약 시판을 허용하지 않는 조치를 말한다. 복제약이 많은 국내 제약사로선 18개월간 유예를 통해 나름대로 준비할 여유를 얻게 돼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관심이 높은 비자 문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공식 성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비자 문제는 미 의회 권한이어서 '선언적인 약속'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통상 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결정권을 가진 미 의회의 확실한 약속이 담보되지 않는 한 미 행정부의 성명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재화 무역협회 통상전략팀장은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은 현찰을 받았고 한국은 약속 어음을 챙긴 셈"이라며 "무난한 협상이었다"고 평가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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