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을 한국 연구자가 없다"|시들해진「해외한국학」|최규장<재미언론인·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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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미 두 나라의 선거열풍에 묻혀 언론에 비칠 결를도 없었지만「한국학의 위기」라는 별난 진단을 내려놓고 마치 시경의 환자를 돌보는 의사 마냥 전문가와 학자들이 며칠씩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지난 연말 한달 간격으로 워싱턴과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에서 각기 열린 한국학진흥회의가 그것이다.
특히 세계최대의 도서관인 미 의회도서관에서 열린「한국학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회의는 한미 일에서 1백20여명의 각계전문가들이 모여 사흘동안 머리를 맞댄 초유의 대규모였다. 예산이 깎이고 학생은 줄고 학자는 늙어 가는데 한국학의 대를 이을 학자양성의 길은 아득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미국에서 한국연구의 명맥을 지키고 있는 학자 수는 줄잡아 2백50명. 이중 반수가 수년 내 정년 퇴직을 맞는다. 한국학자의 평균연령이 50대 중반이어서 젊은 후계학자가 없으면 한국강좌의「자리」마저 노 교수와 함께 사라질 판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한국학진흥방안으로 순회교수와 강좌 시리즈, 번역과 어학훈련, 사장된 우수박사논문의 출판, 참고문헌의 전산표준화 등 이 집중 논의되었다. 인력과 자료의 공동이용으로 활로를 찾자는 주장들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한국학의 현장이 노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학분야의 조교수비율이 11%에 불과하다는 통계는 후속 파이프라인이 얼마나 가냘픈가를 말해 준다.
도널드 클라크 교수(트리니티 대)주장대로 미국에서의 한국학은「선교사시대」로부터 시작, 해방 전후「군정시대」를 거쳐 50년대「한국유학생시대」를 꽃피웠다. 바로 이세대가 60고개를 넘은 것이다. 그 뒤「평화봉사단시대」를 거쳐 80년대에는 출신 별로 한국계와 미국계로 갈리고 성향별로 학술 파와 실용 파(기업정책기관 참여)로 나뉘면서 한국학은 다원화의 새 국면을 맞았다.
새로운 시대환경에 따라 한국학은 어떤 모습으로 진로를 잡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가 왔다.
첫째는 한국학이 동양학의 맥락에서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는 현실이다. 미국에서 한국연구만으로는 설 자리가 없다. 중국·일본을 모르고는 한국을 가르칠 수도 없다. 적어도 동아전문가라야 살아남는다. 상호의존시대의 학문의 국제화가 아니더라도 비교 학 차원의 접근은 한국학이 살아갈 전략이 될 것이다.
다음은 재정지원 문제다. 우리나라의 교육문화재단수는 4백40개. 실상이야 어떻든 자산규모 15억 원이 넘는 재단만 40개로 소개돼 미국에서 다투어 손을 내민다. 그러나 돈을 대는 입장에서는 왜 미국에서의 연구를 한국이 지원해야 되느냐고 묻는다. 손을 내미는 쪽에서는 작은 대학에서 13명의 박사를 배출했는데 10명이 한국으로 돌아간 실례를 들어 미국이 인재 양성소 구실을 했으니 이제 품앗이 할 때가 되었다는 태도다.
게리 레자드 교수(콜롬비아 대)는 미국의 한국학진흥에 앞서 한국에서의 미국 연구가 급하다는 이색주장을 내놓았다.『코리안은 몽고족 계열이며 6세기까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선풍기와 운동화를 수출하는 나라.』
이태전 미국의 맥필런 교과서가 한국을 그같이 소개했을 때 한국정부는 워싱턴의 교육부에 항의하고 평양방송은「미국정부의 교과서 음모」에 남북이 공동대처하자고 나섰다.
레자드 교수는 이는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한 실례라면서 미국 같은 복합적 상향(Bottom up)사회 구조를 이해 못하면 어떤 단추를 눌러야 될지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교과서와 연방정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지난 가을학기부터 프렌티스홀 교과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독립장으로 펴내 세종대왕의 얼굴이 나오고 박종화의 시가 실렸다. 뉴욕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벽안의 교사가 채만식의 소설을 가르친다.
이는 올해로 4년째 실시한 미국사회교사와 교과서편집자 워크숍(한국교류재단후원)의 결실로 이번 워싱턴회의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번 회의에서 신일철 교수(고려대)는 그 동안 한국학은 전쟁과 격동 속에서 정치중심이었다고 지적하고 철학·문학·언어 등을 통한 통합된 한국학 연구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 한국학의 앞길에는 교차문화훈련, 흥 돋우는 접근방법의 개발, 실용적 지식의 전파를 통한 저변확대로 대중에의 접목이라는 시장개척정신으로 나이든 한국학에 새 피를 공급하는 도전이 놓여 있다. 한미관계는 그 동안 군사와 무역만을 생명선으로 여겨 왔지만 3억 인구와 1백50만 교포의 삶의 터전인 미 주에서 한국연구가 조락 한다면 태평양시대의 주역으로 안보와 경제관계의 기층이 튼튼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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