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View] 구두 사러 가 남편 팬티 사는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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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올 여름 신을 구두가 없다며 집을 나선 아내가 4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올 줄 모른다. 무슨 구두 하나 사는데 4시간이나 걸리는 것인지, 집을 나선지 5시간이 다 돼서야 아내가 집으로 들어선다.

구두 하나 사가지고 오겠다던 아내는 주차장에서 전화를 걸어 짐이 많으니 좀 도와달라며 내려오란다. 내려가 보니 아예 백화점을 통째로 헐어 온 듯 바리바리 쇼핑백 꾸러미를 차에서 내려놓는다.

“이게 다 구두야?”

“아니 내가 미쳤어요? 구두를 이렇게 사게? 구두는 못 샀어. 근데 가서 보니까 살게 많더라고, 애들 옷이랑 당신 팬티랑 샀어. 막내 수학여행 갈 준비까지 하다 보니까 구두 살 돈은 없더라고.”

이것이 여자의 쇼핑이다. 남자들은 계획된 아이템을 예정된 장소로 가서 구매하고 구매가 끝나면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쇼핑 구조 즉, 직선적 구매구조를 보이지만 여자는 방사선적 구매구조를 보인다. 살듯 했다가 안 사고, 영 관련 없는 아이템들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이런 아내의 쇼핑에 함께하면서 물건을 들고 쫓아다닐 수 있는 인내심 많은 남자는 드물다. 아내를 따라다니다 보면 어지럼증이 생기고, 속이 미식거리는 남자가 이상할 것도 없다.

가전제품 코너에 들어선 50대 여성은 김치냉장고가 필요해서 왔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가족들이 현재 필요하거나 앞으로 필요한 제품들의 리스트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김치냉장고를 고르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듯 대형 냉장고 앞으로 간 이유는 곧 결혼할 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작은 전기밥솥 쪽으로 가면서 그녀는 생각한다. ‘석 달 후에 서울로 대학생활을 하러 떠나는 작은딸이 밥을 해 먹으려면 제일 작은 밥솥으로 하나 사줘야 하는데’라는 마음을 먹고 가장 작은 밥솥을 고르는 것이다.

판매하는 사람이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사실 헷갈리게 되어 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여성 고객은 참으로 변덕이 심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사실상 여자들은 머릿속에 있는 많은 리스트를 처리하다 보면 구매의 순서가 바뀌는 것은 항상 벌어지는 일이다.

더구나 여기에는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오늘 꼭 사려고 마음먹지는 않았어도 전기밥솥을 세일하면 마음이 바뀐다. 작은딸이 석 달 후에나 서울로 가 자취를 하게 되더라도 오늘 밥솥 세일을 하면 석 달 후의 일정이 오늘로 당겨지게 된다.

여성은 그녀들의 인생에 얽혀 있는 가족들의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복잡한 거미줄처럼 쇼핑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고객이 뭔가 만지고 보고 있다면 그녀 자신을 위한 것 외에 가족들 중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보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여성 고객을 대할 때는 그 여성의 전반적인 필요를 읽어 내려가면서 응대해야 한다. 김치냉장고를 보던 50대 여자가 작은 밥솥을 보고 있다면, “가족 중에 작은 밥솥이 필요한 사람이 있나 봐요”라고 말하자. 그러면 여자는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작은딸이 서울로 대학을 가요. 이번에 서울대에 붙었거든요.”

이 순간을 결코 놓치면 안 된다.

“와! 따님이 그렇게 공부를 잘하니 정말 좋으시겠어요. 그래서 자취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사시는군요. 그렇게 공부를 잘하면 돈을 쓰셔도 신이 나겠어요.”

이렇게 여성 고객의 삶에 직접적으로 파고들면 기분 좋지 않을 여자가 없다. 여자는 자신의 삶에 들어와서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깊은 신뢰를 느끼고 빠르게 친밀도를 형성해 간다.

여성의 삶은 그녀 자신을 중심으로 번져 가는 거미줄이다. 그 거미줄처럼 형성돼 있는 줄기마다 구매의 필요가 달려있다. 여성의 이러한 거미줄적인 이벤트를 빠르게 간파하고 지혜롭게 헤아려 줄 때 판매의 찬스는 늘어나게 된다.

김미경·W인사이트 대표 www.w-insigh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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