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브라운 '차기' 약속 10년 만에 지켰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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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7일 고든 브라운(56)이 영국 총리로 취임하고, 토니 블레어(54)가 10년간의 총리 생활을 마감하면서 두 사람의 너무나 다른 성격, 미묘한 라이벌 관계, 최근 몇 년간의 갈등이 유럽 언론에 집중 조명되고 있다.

지난주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 커튼이 배달됐다. 주문한 사람은 총리 부인 셰리 블레어가 아니라 고든 브라운의 부인 사라였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을까"라는 말이 유행한다. 일부 언론은 기다리다 지친 브라운의 마음, 이로 인한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를 상징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브라운은 목사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엄격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일요일마다 세 차례씩 예배를 드렸다. 학창 시절 럭비를 하다 왼쪽 눈의 시력을 잃으면서 더욱 내성적이 되어 버렸다.

반면 블레어는 옥스퍼드에서 롤링 스톤스의 리드 싱어 믹 재거를 꿈꾸며 살았다. 브라운이 밤새 경제학 서적에 빠져 있을 때 블레어는 기타를 치고 친구들과 위스키를 마시면서 인생을 노래했다.

◆깨어진 그라니타의 약속=1983년 30대 초반에 나란히 하원의원에 당선된 두 사람은 노동당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의기투합했다. 94년 이들이 주도한 '제3의 길'이 당 강령으로 채택되면서 두 사람은 노동당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은 두 사람을 '브라운과 블레어'로 불렀다. 그러나 존 스미스 당시 노동당수가 사망하기 3주 전 블레어를 2인자로 지명하면서 호칭은 '블레어와 브라운'으로 바뀌었다. 당시 언론은 "노동당이 차기 집권을 위해 과묵한 성격의 책벌레보다는 활달하고 인기 좋은 대중스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94년 5월 두 사람은 유명한 '그라니타 식당의 밀약'을 맺는다. 브라운이 총리 도전권을 양보하는 대신 블레어가 집권에 성공하면 차기는 브라운에게 넘긴다는 것이었다. 블레어는 97년 마침내 총리가 됐고 둘은 여전히 좋은 관계였다. 그러나 2001년 유로화 도입 건으로 갈등이 시작됐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도대체 언제 총리 자리를 내놓을 거냐"는 것이었다. 블레어는 결국 올 초 떠나겠다는 입장을 비췄다. 27일 두 사람은 악수를 했지만 여전히 편해 보이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2년 전 총선을 앞두고 블레어가 브라운을 한직으로 내치려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더욱 그런 모습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의 깨어진 파트너 관계로 묘사되고 있다. 블레어가 퇴임 뒤 중동 특사로 다시 활동하게 되면서 그에 비해 미국 중심의 중동 질서에 덜 호의적인 브라운과의 정치무대 2라운드 힘겨루기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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