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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만난 카르도주 전 브라질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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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만난 사람 = 전영기 정치데스크

인구 1억8000만 명의 대국을 다스렸던 지도자다운 풍모일까. 정치 현장의 시행착오 속에 끊임없이 이론을 수정해 온 70대 사회과학자의 경륜 때문일까.

카르도주 전 브라질 대통령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한국과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던지는 조언도 거침이 없었다.

그의 접근법은 현실적이었으며 사려 깊었다. 편안한 미소와 솔직한 답변, 유머와 배려심이 인터뷰 초반의 굳었던 분위기를 금세 부드럽게 만들었다.

카르도주 전 대통령은 27일 오전 '오스트리아 센터 빈(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유엔 경제사회국(DESA) 주최 '정부 혁신을 위한 제7차 세계 포럼'의 사회자로 2시간 동안 회의를 이끌었다.

그는 포럼의 참석자들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았다. 공식 회의를 마친 오전 11시(현지시간)부터 1시간의 인터뷰가 약속돼 있었다. 밀려드는 외국 주요 언론의 공세적인 대담 요청 때문에 그와의 만남이 하마터면 무산될 뻔했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브라질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한 뒤 '카르도주 대통령은 아주 관대하고 유머가 넘쳤다'고 회고록에서 쓰고 있다. 그때 김 대통령에게 '브라질이 한국에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두 나라가 맞붙을 경우만은 결코 져 줄 수 없다'고 말했다는데.

"하하하. 그런 기억이 난다. 김 대통령과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보여 주며) 또 김 대통령에게 '내가 대통령이 된 뒤 경제 정책을 집행하다 보니 나의 이론에 모순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학자 시절 가졌던 생각을 많이 수정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맞다. 나의 종속이론은 그 후 진행된 세계화를 고려하지 못했다. 재평가를 해야만 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국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세계화된 시대에 폐쇄적 민족주의나 이념의 과잉으론 국익을 추구할 수 없다. 경직된 도그마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고립된 나라에서 국익을 챙기기 힘들다."

-종속이론은 파산한 건가.

"현실적인 이론이 아니다. 일부 긍정적인 면도 있다. 정치와 경제 과정을 통합적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지금도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 386세대라고 불리는 80년대 한국의 운동권 학생들은 카르도주 종속이론의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현재 한국 사회의 중심 세대이고 노무현 정부의 핵심 세력으로 진출했다.

"집권 세력이 도그마에 갇혀 있으면 국익을 해칠 수 있다. 실용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념 과잉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의 카르도주'는 '현재의 카르도주'보다 한국인에게 더 많은 영향을 줬다. 정작 자신은 어떻게 변해 왔다고 보나.

"70~80년대 브라질은 군사정권, 독재의 나라였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 90년대 들어 재무장관을 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그 힘으로 나는 집권했다. 근본적인 시장친화적 정책을 썼다. 대통령을 그만둔 뒤에는 세계화 시대에 국가와 시민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의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나는 종속이론가에서 전 세계 차원의 시민사회 리더로 변한 셈이다."

-어제 한국에선 노 대통령과 대학의 총장들이 대학교육의 방법론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엘리트를 잘 키워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한가, 대중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크게 넓혀 주는 게 중요한가 하는 문제였다.

"노 대통령은 당연히 엘리트에 의한 경쟁력 강화를 주장했나?"

-아니다. 그 반대다. 당신은 어느 쪽에 우선 순위를 두나.

"분명한 건 교육의 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생은 좋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걸 전제로 경쟁력 강화와 기회의 확대 사이에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내가 상파울루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교수들은 프랑스어로 학생을 가르쳤다.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요새 상파울루 대학은 빈민 지역에 캠퍼스를 하나 더 만들었다. 기회의 확대를 위해서다. 잘못 다루면 둘 다 놓칠 수 있다. 레토릭(수사.修辭)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정교한 방법과 전략으로 미묘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지구적 차원의 시민 지도자로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유엔이 세계인의 신뢰를 받도록 해주길 바란다."

-미국에 대한 생각은.

"쿠바의 지도자 카스트로조차 개방을 하려 하는데 김정일의 북한은 시대착오적인 반미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북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건 미국 부시 행정부의 책임이다. 부시는 이라크를 선제 공격함으로써 세계의 리더가 되는 데 실패했다. 그는 이슬람 세계를 악마화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김정일한테 변화와 개방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을 다시 한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은.

"두 가지를 하고 싶다. 우선 범죄.폭력과의 전쟁을 벌이겠다. 법적 정의를 세우고 싶다. 범죄율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리고 교육 개혁을 꼭 하고 싶다. 교육의 수준이 너무 떨어져 있다. 교육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전영기 기자

유엔 DESA 세계 포럼은 …
지식토론 올림픽

모차르트와 요한 스트라우스의 음악이 넘치는 오스트리아 빈은 인구 2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유엔 산하 기구와 국제회의가 많은 도시다. 북한 핵 시설을 사찰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한 각종 유엔 기구의 본부가 즐비하다.

26~29일엔 유엔 경제사회국(DESA)이 주최하는 행사 중 가장 성대한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국제회의의 이름은 '정부 혁신을 위한 세계포럼'이다. 올해 열린 7차 포럼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외교부, 한국과 이탈리아의 행자부, 세계은행, 한국의 경희대학교, 미국의 하버드대, 두바이 공공정책대학 등 33개의 기관 파트너와 2000명 이상의 세계인이 참석했다.

포럼의 주제는 '정부는 어떻게 신뢰를 얻는가'다. 정부 투명화, 정보 접근성, 공공 서비스의 전달, 시민사회의 관여와 참여, 선거와 의회 제도의 정상적 작동, 공공과 민간의 파트너십 구축을 주제로 1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회의가 열렸다. 가히 작은 '지식토론 올림픽'이라 할 수 있다.

경희대는 한국 대학에선 유일하게 기관 파트너로, 조인원 총장은 기조연설자로 각각 유엔 DESA의 초청을 받았다. 2009년 한국에서 유엔 DESA와 공동으로 세계시민포럼(WCF)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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