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짜는 외교/생색용 별로없고 난제만 떠안아(김영삼시대: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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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방압력·국제위상 대책 관심/남북관계 푸는 것 첫 주요과제
김영삼외교의 가장 큰 줄기는 아마도 남북문제를 축으로 움직여갈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김 대통령당선자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심각한 경제난의 극복,사회적인 기강회복 등 주로 국내적인 문제들이고 보면 김영삼정부는 정상회담 등 화려한 인기위주의 대외정책보다는 내정에 더 치중해야 할 입장이다.
그러나 남북문제는 김 당선자의 재임기간(93∼98년) 사이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의 많으며 동북아도 새로운 질서재편시점에 처해 있는 만큼 김영삼정부의 외교적인 환경은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정부가 맞을 첫 과제의 하나는 대북정책의 조정일 것이다. 김 당선자는 당선직후부터 성과주의에 집착해 남북문제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우선 냉각기에 빠져 있는 남북문제를 어떻게든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제에 부닥쳐 있는 것이다.
특히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대북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과 보다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진보적인 의견 등 정부내부의 두가지 흐름을 어떤 방향으로 조정할지가 관심이다. 보다 개방적인 통일원이나 학계의 의견이 더 반영될지,아니면 강경노선의 안기부가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계속 잡게 되는지에 따라 대북정책의 추진방향이나 속도는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안기부의 업무를 어떻게 조정하는가 하는 점도 관심이다.
김영삼정부가 처음에는 대북문제에 비록 신중하게 대처하더라도 북한의 체제변화 등이 일어날 경우 그에 따른 대비는 충분히 갖춰야 할 것이다. 김 당선자의 재임기간에는 김일성의 신변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으며 김정일체제로의 완전한 승계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통일과 연계시키는 정책적인 대비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세의 흐름과 기회포착에 어느 누구보다 빠른 김영삼정부가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당선자가 투표직후 통일동산을 찾은 것도 재임중에 통일에 대한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가 당장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핵문제를 어떻게 타결해 나갈지,경제교류 등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에 관해 북한은 물론 주변국들은 주시하고 있다.
대북문제는 단순히 국내문제만도 아니라는데 다루기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너무 보수적으로 대처하다 보면 미국·일본의 대북관계개선에 뒤질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앞질러 가다간 국내외적인 반발에 부닥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김 당선자가 핵문제를 유엔에 가져가겠다고 하는 발언은 성급한 측면이 있으며 외교안보에서 국제적인 감각을 제대로 갖춘 보좌팀의 구성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 같다.
노태우정부에서의 외교가 북방정책이라는 틀 속에서 화려하게 진행됐다면 김영삼시대의 외교는 더욱 어려우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모양이 될 수 밖에 없다.
노 정부의 북방외교는 임기중 45개국에 이르는 나라와 수교를 하고,유엔에 가입하는 등 국민들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정부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만한 소재가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이제까지의 외교가 미국·일본 일변도로 불가피하게 좁은 선택의 폭에서 움직였던데 반해 EC의 등장·경제블록화 현상 등 훨씬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정책을 결정해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라면 새정부의 외교는 우리 외교의 틀을 새로 짜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 냉전구도하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와 미국에의 의존을 벗어나 새로운 파트너들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김 당선자가 당선확정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대미·일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주변강국 모두와 관계를 정상화한 상황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다소간의 조정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대미·일관계 중시라는 그림도 전방위외교라는 틀 속에서 그려져야 한다.
이러한 전방위외교에 따라 다자외교가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통상관계도 GATT체제가 새로운 우루과이라운드체제로 재정리되고 있고,새로운 장벽이 될 수 있는 환경문제 등 다양하고 중요한 국제문제들이 다자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다자외교의 하나로 가장 먼저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동북아에 있어서 다자 안보협의체 구성문제다. 김 당선자가 야당총재 시절부터 동북아지역에서의 다자간 안보대체제 구축문제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왔고,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당선자도 이에 대해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온 APEC 등 아태지역의 경제협력문제도 이러한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또 한가지는 정무관계에서 통상·환경 등 경제외교의 비중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현재 당장 우루과이라운드의 성패가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목을 죄고 있는데다 쌀시장 개방과 관련한 국민감정과 국가이익의 적절한 조율도 풀기 어려운 과제다.
또 다자간의 통상관계를 규율하는 우루과이라운드의 성패와 관계없이 슈퍼301조 부활 등 미국의 대외경제압력이 강화될 것이 확실한 상황이어서 이를 어떻게 능동적으로 극복하느냐가 김영삼외교의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국내경제의 활성화를 첫번째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새 정부로서는 경제외교에 중점을 두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김진국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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