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숫자놀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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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임금이 세상을 뜨면 영의정을 책임자로 하는 존호도감이라는 임시 기구가 설치된다. 생전의 임금을 어떤 호칭으로 부를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구다. 포악한 임금이었으니 왕자 없는 연산군으로 하자,나라의 기틀을 마련했으니 세종대왕으로 하자는 등의 역사적 평가를 포함한 왕의 묘호를 이곳에서 결정했다.
이렇듯 절대군주의 왕조시절에도 자신의 치적을 비화하거나 드높일 수 있는 명칭을 임의로 만들거나 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반드시 사후에 추존하는 형식을 취했음은 공정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 위한 현명한 배려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들어 6공 다음의 정권을 어떤 호칭으로 부를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오랜 군사통치를 청산한다는 점에서 7공이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고,권력구조의 큰 개편도 없고 헌법의 대개정도 없는데 어째서 7공이냐는 반론도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명칭을 둘러싸고도 신경전이 있었다고 들린다. 당선자측에서는 「정권인수위」를 내세웠고 현정부쪽에서는 혁명적인 상황도 아닌데 어째서 정권인수냐고 반대했다 한다.
사실상 군사정치의 청산을 고하고 새로운 문민시대의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종래 정부와는 뭔가 다른 차별화를 부각시키고 싶은게 당선자쪽의 심정일게다. 그런 탓인지 김영삼대통령당선자도 「지금까지 역대정권은 민주적 정통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모두 1공이었다면 새정부야말로 명실상부한 2공이라는 견해가 일부 학자 사이에 거론된다」고 매우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 점을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단순히 헌법골격의 개정여하에 따라 공화국의 숫자를 바꿔온 산술적 방식에서 벗어나자는 것이고,둘째는 정부의 치적과 평가에 따라 공화국의 의미부여를 새롭게하는 사후평가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군인출신 아닌 문민대통령이라고 취임전부터 무조건 7공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군인출신이라해도 민주화에 기여한 치적이 평가된다면 6공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작업을 지금부터 냉엄히 시작하자는 것이다. 취임전부터 정권인수니,제2공화국이니 하는 자화자찬격의 평가는 자칫 당선자측의 교만으로 들릴까 자못 걱정된다. 어떤 정부냐하는 평가는 어떤 일을 했느냐에 달려있지 출신성분에 달려있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권영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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