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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당선자가 매듭풀어야/오홍근(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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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산기관장모임」사건과 전개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희한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초 이 사건은 선거운동원도 아닌 전직장관(그것도 법무장관이었다)이 중립내각 휘하의 고급관리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특정후보의 당선을 위해 기자들을 매수하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한다는 발언을 하고,그 대화내용이 고스란히 도청되어 공개됐다는 것이 대략의 줄거리였다.
○본말 뒤바뀐 인상 짙어
이같은 별난 이야기가 선거에서 특정후보에게 악재로 작용하리라는 항간의 예상을 1백80도로 뒤엎은 것도 그렇고,수사과정에서 사건의 가닥이 늘어나면서 수사의 우선 순위가 뒤바뀌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희한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선거직전 부산시장과 부산경찰청장이 경질되고 「즉시 수사착수」의 엄명이 떨어졌을 때만 해도 이 사건은 선거법위반 사건이었다. 이 무렵에는 도청내용을 폭로한 국민당쪽에서도 녹음경위를 밝히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민자당쪽에서 「공작에 의한 사생활 도청」이라며 규탄하고 언론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자 이 사건은 「선거법 위반」과 「도청」사건으로 두갈래가 되었고,선거직후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회견에서 「도청의 엄정한 규명」을 강조하자 「주선거법위반·종도청」에서 「주도청·종선거법위반」 사건으로 바뀌는 인상을 주었다.
물론 검찰에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도청규명」을 강조한 사람이 바로 차기대통령이고,부산모임의 당사자가 전직 검찰총수였으니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당선자의 말이 곧 검찰의 수사지침이고 방향인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그리 좋은 모양은 아니다. 사실 관계를 충분히 밝혀 검토한 연후에 A는 구속,B는 불구속하는 식의 통상적인 사건처리방식과는 달리,「A는 구속해서는 안되고 B는 구속해야 한다」는 잣대를 미리 마련해 사건을 재단하려다 야당과 여론이 「수사형평을 잃었다」고 반발하자 뒷걸음질치는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청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처벌법적용 검토과정도 몹시 옹색스러워 보인다.
검찰은 관련자들이 체신부장관의 허가없이 고출력 무전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고 전파법을 적용하려 했으나 그들이 사용한 것이 FM송·수신기여서 처벌이 어렵게 되고,그들의 「사생활 뒷조사행위」도 계속성이 있는 업으로 볼 수 없어 신용조사업법의 적용마저 곤란해지자 주인의 동의없이 주거(부산복집)에 침입해 불법행위를 했다해서 주거침입죄 적용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 처리방식과 달라
안타까운 이야기다. 물론 공무원 신분인 안기부직원이나 도청관련 금품수수 당사자들에 대한 강제수사는 별개의 문제다.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핀다는 지적을 받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지금은 실로 30여년만에 우리 모두의 숙원이었던 문민시대를 여는 시점이다. 모두들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출발을 다짐하는 엄숙한 시간이다.
더구나 부산모임에서 오간 이야기에는 오늘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논의해야 할 지역감정,그 지역감정을 조장해야 한다는 비열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사건과 관련,요즘 언론에서는 「중립검찰의 시험대」란 말을 자주 쓴다. 그러나 「중립」은 사실은 사족이다. 검찰은 원래 중립이어야 한다. 전직 총리를 구속한 일본검찰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그렇다.
○제자리 찾아야할 검찰
결국 문제는 김영삼당선자가 매듭을 풀어야 한다. 「도청의 엄정한 규명」을 강조한 것은 도청사건만을 수사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밝히는게 좋다. 아울러 검찰에도 제자리를 찾아 서도록 희망을 피력해 준다면 더욱 좋다.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단하라」는 법관들의 법언은 검찰에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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