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남자들의 로망 "예쁜 교사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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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건국 이래 교사가 최고의 상종가다. 남성들이 꼽는 여성 배우자 순위에서 특히 그렇다. 이런 우스개도 유행이다. 미혼 남성들이 선호하는 신부감 1위가 예쁜 교사란다. 2위는 그냥 교사, 3위는 못생긴 교사다. 이러다 노총각들에게 ‘교사를 아내로 둔 선후배, 동료들을 먼저 공략하라’ ‘모교를 자주 찾아가 신입 여교사와 마주칠 기회를 만들어라’ ‘조카의 유치원 등원을 적극 도와라’ ‘이것도 저것도 힘들면 일단 애인을 만든 뒤 교사시험 준비를 시켜라’ 등의 지침을 일러주는『여교사와 100일 내에 결혼하는 법』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아니 ‘이태백’을 넘어 ‘삼태백’이 등장하는 하수상한 시절이고 보면, 이런 책은 나오는 즉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다고 봐야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있는 노총각들에게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긴 생머리에 피부가 하얀 여자”라든가 “대화가 통하는 여자”라는 식의 서술형 답안이 돌아왔다. 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길지언정 미래의 배필에 대해 뭔가 로맨틱함이 끼어들 여지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요즘은 “교사면 좋겠다”는 단답이 대다수다. 여교사가 이렇게 각광 받는 이유는 정년까지 무탈하게 다닐 수 있는 안정성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남자들의 공포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직장에서 잘려 나가는 최악의 순간이 오더라도 의지할 수 있는 ‘종신보험’ 같은 배우자를 원하는 것이다.

 이상형은 곧 꿈이다. ‘종아리가 예쁜 여자’ 혹은 ‘발목이 가는 여자’라는 남자들의 꿈을 철딱서니 없다며 비웃던 여자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상형에 대해 논할 수 있었던 시절이 행복했다는 생각도 든다. 꿈이 사라진 건 어른이나 아이나 별 차이가 없다. 얼마 전 강남의 한 고3 담임교사가 했다는 푸념을 전해 들었다. 진학 상담을 하는데 아이들 중 상당수가 “돈 많은 여자 만나 장가갔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단다. 꿈을 먹고 자란 세대인 담임교사는 당연히 아연실색, 분기탱천했다.

 그 담임교사가 고3이던 수십 년 전보다 아이들은 훨씬 영리하고 현명해진 것일지 모른다. 이 영악한, 아니 현실적인 아이들에 의해 형성될 21세기 신부 후보군은 대강 윤곽이 드러난 듯하다. 극소수지만 부모한테 1000억원대의 재산을 물려받거나, 아니면 TV 드라마를 통해 ‘돈 잘 버는 직업’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된 성형외과 의사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정년까지 안전하게 직진할 수 있는 교사이거나. 어떤 상황이 닥쳐도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는 경제력, 아니면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는 안정성. 후보군에 끼기 위한 필수 요소는 둘 중 하나다.

이런 현실이 고단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겁난다. 때가 어느 땐데 꿈 얘기 하고 있느냐는 비웃음을 살까 봐서다. 대신 이렇게 말해야겠다. 아, 나도 (교사)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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