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있는 노총각들에게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긴 생머리에 피부가 하얀 여자”라든가 “대화가 통하는 여자”라는 식의 서술형 답안이 돌아왔다. 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길지언정 미래의 배필에 대해 뭔가 로맨틱함이 끼어들 여지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요즘은 “교사면 좋겠다”는 단답이 대다수다. 여교사가 이렇게 각광 받는 이유는 정년까지 무탈하게 다닐 수 있는 안정성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남자들의 공포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직장에서 잘려 나가는 최악의 순간이 오더라도 의지할 수 있는 ‘종신보험’ 같은 배우자를 원하는 것이다.
이상형은 곧 꿈이다. ‘종아리가 예쁜 여자’ 혹은 ‘발목이 가는 여자’라는 남자들의 꿈을 철딱서니 없다며 비웃던 여자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상형에 대해 논할 수 있었던 시절이 행복했다는 생각도 든다. 꿈이 사라진 건 어른이나 아이나 별 차이가 없다. 얼마 전 강남의 한 고3 담임교사가 했다는 푸념을 전해 들었다. 진학 상담을 하는데 아이들 중 상당수가 “돈 많은 여자 만나 장가갔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단다. 꿈을 먹고 자란 세대인 담임교사는 당연히 아연실색, 분기탱천했다.
그 담임교사가 고3이던 수십 년 전보다 아이들은 훨씬 영리하고 현명해진 것일지 모른다. 이 영악한, 아니 현실적인 아이들에 의해 형성될 21세기 신부 후보군은 대강 윤곽이 드러난 듯하다. 극소수지만 부모한테 1000억원대의 재산을 물려받거나, 아니면 TV 드라마를 통해 ‘돈 잘 버는 직업’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된 성형외과 의사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정년까지 안전하게 직진할 수 있는 교사이거나. 어떤 상황이 닥쳐도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는 경제력, 아니면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는 안정성. 후보군에 끼기 위한 필수 요소는 둘 중 하나다.
이런 현실이 고단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겁난다. 때가 어느 땐데 꿈 얘기 하고 있느냐는 비웃음을 살까 봐서다. 대신 이렇게 말해야겠다. 아, 나도 (교사)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