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착취는 딴 나라 이야기" 사장님 되고…교사 꿈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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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 출신의 외국인 산업연수생 왕얀(37)은 29일 아침 '어머니'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지 않고 청소도 안 하는 게으름을 떨었기 때문. 그러나 아무리 고함을 쳐도 왕얀은 '씨익- '웃고 만다. 어리광을 부리며 도망가는 시늉도 한다.

경북 영천에 있는 신녕자수에서 근무하는 왕얀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 회사 김태원 사장의 부인 여운상(50)씨다. 여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중국인 산업연수생들의 대모(代母)다.

그는 매주 한번씩 이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요리를 직접 한다. 밤참용 간식도 마련해 준다. 또 매달 받는 90만원 안팎의 월급을 한푼도 쓰지 말라고 타이른다. 네 명의 연수생은 입사 6개월 만에 각각 5백만원가량을 고향에 송금했다.

여씨는 "부족한 일손을 메워준 외국인 근로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요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왕얀은 "한국에서 모은 돈으로 고향에서 번듯한 식당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회사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코리안 드림'을 일구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케이씨엠의 이명복 사장은 지난달 말 외국인 근로자들이 서투른 한국어로 쓴 한통의 편지를 받고 가슴이 뭉클했다. '한국에서는 사장이 때리고 걸핏하면 월급도 안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동생처럼 잘 보살펴 주셔서 고맙다'는 요지다.

이 회사에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알림바 브라이언(27.필리핀)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직종에서 일하는 것을 빼놓으면 급여와 복지.처우 등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토요 격주휴무제는 물론 야근수당 산정 때도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다.

휴대전화 케이스를 만드는 서울 독산동 신영프레시젼의 외국인 연수생 월평균 봉급은 1백20만원을 웃돈다. 외국인 고용업체의 평균급여보다 30%가량 더 많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조선족 허은화씨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고 작업환경도 좋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 근무를 잘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 터를 잡은 외국인 근로자들도 적지 않다. 중국 산둥(山東)성 출신의 류빙(29)은 2년 동안 부산에 있는 주방 목재제품 업체(동원산업사)에서 번 돈으로 수산물 도매업체를 차렸다. 1천5백만원을 들여 연 가게의 장사가 잘 돼 최근에는 연 매출이 2억원을 넘어섰다.

류빙은 최근 기협중앙회에 보낸 감사 편지에서 "동원산업사 사장은 일거리가 없는 날에도 공장 청소를 하라고 하며 월급을 매달 1백만원씩 안겨줬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경기도 파주 유일전자에서 근무했던 베트남출신의 규엔비 두옹(28)은 2년간의 산업연수생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가 올 3월 한양대 한국어학과에 입학했다. 베트남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이 같은 사례를 묶어 '외국인 연수생 모범사례집'을 최근 펴냈다. 연수지원부 김승환 부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착취나 폭행을 당한 사례가 이따끔 보도되지만 대부분의 기업에선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윤희.김정하 기자<yunhee@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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