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한국경제 살리기(유세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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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일부터 8일까지 경기도에서 펼쳐진 민자당의 김영삼,민주당의 김대중,국민당의 정주영후보 등 세명의 유세를 지켜보고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격렬한 시위나 돌·최루탄의 난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흔히 한국선거하면 예상되는 이러한 폭력사태가 없이 오히려 차분하게 유세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는 분명 87년 대통령선거때와는 다른 점이었다. 폭력이 극심했던 당시의 선거유세에 대해서는 신문·방송이나 한국 친구들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후보들을 향한 돌과 달걀세례·데모,그리고 시위대에 대한 빗발치는 최루탄 등등.
그런데 이번 유세에서는 그러한 우려가 말끔히 씻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정치가 민주주의로 가는 좋은 징조를 보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한국의 선거유세는 미국의 유세와 별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과 스웨덴의 선거유세를 취재한 경험에 의하면 한국의 선거유세도 이들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큰 소동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각당 후보들의 TV연설과 신문지상에 전개되는 정책광고 등도 이들 나라들과 다를바 없다. 미국 공화당의 코끼리,민주당의 당나귀처럼 곰·토끼와 거북이·호랑이 등 동물 마스콧을 사용하는 것도 똑같다.
다만 다른게 있다면 한국유세가 좀더 열광적이라고나 할까. 각종 악기동원,지지자들의 환호 등이 미국·스웨덴의 그것보다는 한결 드세다는 것이다. 물론 3당 주자들간의 선두경쟁이 선거분위기를 더욱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은 배제할 수 없겠다.
그러나 한국의 선거전은 미국의 그것과 한가지 점에서 매우 달랐다.
「선거부패」가 바로 그것이었다. 한국 언론들에 따르면 돈과 선심성 선물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YS시계니,DJ볼펜이니,국민당 점퍼니 하는 유권자들에 대한 「뇌물」이나 현금과 바꿀 수 있는 티킷,공명선거 분위기를 혼탁하게 하는 향응제공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거혼탁은 분명 미국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현상이다. 한표를 얻기위한 매표나 선심행위는 이제 미국같은 선진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행태다. 이같은 금권선거는 우리네 외국기자들 눈에는 매우 냉소적으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한표를 얻자는 각 정당들의 잘못에 있다. 그러나 돈과 선물을 은근히 기대하는 몇몇 유권자들의 의식도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겠다.
이렇게 매표행위가 판치고 선심행위가 난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오리혀 민주주의를 역행시키고 좀먹는 형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정말로 건강한 선거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은 뇌물을 거절해야 한다. 오로지 금권을 배제하는 원리원칙에 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건강한 민주주의,훌륭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주시해야할 점은 한국은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정치,경제는 경제가 되지 못하고 정치가 경제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기업을 도와주면 기업은 그 반대급부로 정부를 도와주게 되는데 이 악순환의 고리는 결국 모든 선거를 혼탁하게 만든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금 각 대통령후보들은 경제문제를 이번 선거의 중요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다. 즉 경제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87년 대통령선거때처럼 정치개혁이 더이상 선거이슈가 못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민주주의의 건강한 상태를 의미한다.
얼마전 김영삼후보의 박재윤경제특보는 『우리는 민주주의에 걸맞은 새로운 경제구조 건설이 필요한데 우리 경제는 아직 과거 권위주의의 틀에 얽매여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후보의 경제문제 조언자 유종근씨 역시 『정부는 경제에 계속 관여하고 싶어하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정부개입은 점점 사라지게 되는 법』이라고 역설한바 있다.
따라서 정부의 경제에 대한 규제완화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공약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이번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커다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침체된 한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아시아 네마리 용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든간에 정치의 경제 지배를 막는데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대통령은 공업기술능력을 향상시키고 자율시장체제로 한국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97년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과 같은 선거혼탁이 재발하지 않게 될 것이다.<존 버튼 영파이낸셜 타임스 서울특파원>
◆필자 존 버튼(39·미국인)은 지난 89년 영국의 유력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기자로 입사,미국과 스웨덴주재 특파원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지난 3월 서울주재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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