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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노조 개혁하려다 오히려 당했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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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02면

인사 청탁, 비자금의 노조 접대비 사용, 선심성 상여금 지급… 20일 감사원이 95개 정부 산하 기관을 특감해 밝힌 비리 유형이다.

노동운동가 출신 김남수 전기안전公 전 감사가 쫓겨난 사연은

한국전기안전공사 김남수 전 감사는 22일 “전기안전공사도 공기업 비리에서 예외가 아니다”면서 “잘못된 관행을 고치려다 사소한 약점이 드러나 노조에 의해 중도퇴진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난달 공기업 감사들이 남미 이과수 폭포로 외유성 출장을 간 것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시점에서 출장을 가지 않았는 데도 갑자기 사퇴했다. 취임 10개월 만이었다. 그 좋다는 공기업 감사직에서 왜 물러났을까?

그가 취임한 것은 지난해 8월.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4월 이해찬 총리의 ‘3ㆍ1절 골프파동’ 후 공직자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가운데 기업체에 근무하는 지인과 골프를 친 것이 문제가 돼 사표를 냈다. 그 후 4개월 만에 감사로 임명되자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었다. 그는 “낙하산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지만 감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한국야쿠르트 노조 위원장을 지낸 김씨는 15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며 두 차례씩 투옥ㆍ해고를 당했다. 노동운동 경력에 청와대 출신의 실세여서 이 회사 노조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씨와 노조의 밀월은 오래가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해 말 노조의 잘못된 관행이 심각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회사와 노조 양측을 밀어붙인 것이 발단이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노조 정기총회일을 휴일로 묵인하고, 노조 창립기념일이 휴일과 겹칠 경우 그 다음날도 근무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간부 인사를 위한 인사위원회에 노조 대표가 참여하고, 조합원의 인사이동도 회사가 조합과 일일이 협의를 거쳐야 한다. 직원들은 실제 근무 여부와 상관없이 초과근무수당을 고정적으로 받는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이런 ‘귀족 노조’가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해친다고 보았다. 그는 “노조와 싸워봤자 시끄럽기만 하고 기관평가만 안 좋아지므로 경영진도 어쩔 수 없이 노조와 타협하는 쉬운 길을 택해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초과근무수당 문제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나머지는 모두 노사 합의에 의해 시행하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 귀족 노조라니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올 2월 말,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 5명이 김씨의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직원 승진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근무시간에 골프를 쳤다’는 내용의 투서가 접수됐던 것. 강도 높은 조사끝에 ‘근거 없음’으로 결론 났다.

5월 초 다시 총리실에 투서가 들어갔다. 근무시간에 극장에서 여성과 영화를 보는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당시 아내와 별거상태였으나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겠다고 회사 측에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는 김씨가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회사 측에 전달했다. 언론과 정치권에 ‘부적절한 행위’를 폭로하겠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김씨는 “감시자를 붙여 미행하고, 여성과 함께 있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협박하는 것이 노조가 할 짓인가? 나도 노동운동을 해봤지만 노조의 행태에 자괴감이 든다. 자정과 개혁 요구에 노조가 보복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 관계자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감사가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을 알고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과수 폭포 외유성 출장이 불거졌다. 김씨는 “끝까지 노조와 싸우려고 했는데 감사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고, 사생활 문제가 도마에 오를 경우 회사에 부담을 주게 돼 어쩔 수 없이 사퇴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퇴직 한 달만인 21일 그는 공사ㆍ노조의 비리를 수사해달라며 사정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2005년 회사가 100억원 규모의 재해단체보험을 특정 보험사와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인력관리팀과 노조 간부들이 부정하게 이득을 본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김씨의 사퇴를 둘러싼 노조와 김씨의 ‘진실게임’의 진실은 무엇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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