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고수들 '쩐의 전쟁' 수 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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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게임의 기술(The Art of Game)
김영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96쪽, 1만3000원

차를 운전하다 보면 뒤에서 바짝 코를 박고 따라오는 차량들이 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충돌할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옆 차선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초보운전자들일수록 공포심은 더하다. 이럴 때 코를 박고 따라오는 뒷 차 운전자들의 심리를 역이용하면 오히려 이들을 옆차선으로 보낼 수 있다. 가령 시속 80km로 달리고 있다면 60, 70km로 속도를 조금씩 낮추자. 그러면 제 풀에 못 이겨 옆 차선으로 옮겨가는 뒷 차 운전자들이 많다. 속도를 낮추기는 싫고, 그러나 충돌하면 자기 과실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게임이론이 나오기 전부터 이렇게 살아왔다. 상대방을 늘 의식하며 산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늘 따지고, 심지어 상대방을 알면 알수록 반응도 좀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반드시 이긴다라는 얘기도 정말 오래 전에 나왔다. 게임이론이란 이런 것이다. 항상 상대방이 있다고 전제한다. 사람은 늘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거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그런 후 상대방의 반응을 일일이 따진 후 자신이 가장 이익을 보는 전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성공 비법'이 게임이론이다.

개념은 이렇게 간단하지만 내용은 지극히 난해하다. 따지고 또 따지는데다 수치와 전문용어가 난무해서다. 우리네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게임이론을 충분히 이해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이런 책에 손이 가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불편함을 없앴다. 게임이론에 관한 학술적 얘기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사례를 설명하면서 '게임이론은 이런 것'임을 절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겁쟁이 게임(game of chicken)이란 게 있다. 두 사람이 차에 타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게임이다. 둘 다 피하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피하면 이 사람은 평생 '겁쟁이'로 낙인 찍혀 조롱 받는다. 이럴 때 이기려면 어떻게 할까. 배수진을 치고, 이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게 비법이다. "운전대를 틀 수 없도록 강철사슬로 묶어버리고 가속 페달 위에도 무쇠덩어리를 얹어 고정시킨다"(172쪽). 그런 후 이렇게 배수진을 쳤다는 걸 상대방에게 반드시 알린다. 그래야 상대방은 이 사람이 절대로 피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서 자기가 피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술은 기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 루이뷔통이나 샤넬 등 명품업체들은 "시가가 수백만원에 달하는 고급제품이라고 할지라도 출시된 지 2~3년 지나면 모두 불태워버린다"(105쪽). 그래야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사들이 거액을 주고 유명 연예인을 굳이 출연시키려 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답은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저렇게 많은 돈을 들이는 걸 보니 자신 있는 훌륭한 영화인 모양이군'이라고 생각할 것"(235쪽)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광고비를 펑펑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음료수를 만드는 A사는)광고를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이 음료수를 한 번 먹어본 뒤 다시 사먹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따라서 광고를 포기하거나 싸구려 광고로 대체한다"(234~235쪽)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수월한 책 읽기'는 제시했지만 저자가 갖고 있는 내공을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한 듯하다. 깊이보다 넓음을 선택한 동기는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루려다 보니 대체로 설명이 부족한 편이다. 사례는 줄이고 설명을 좀더 풍부하게 했으면 싶다.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여럿 있다. 제목은 '부동산대책이 실패한 이유는?'인데 정작 설명은 없다. 물론 이런 것들은 이 책의 '옥의 티'일뿐이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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