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은닉처”대여금고/방범·방화장치에 비밀까지 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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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현대 수표다발 세는데만 3시간
현대중공업 비자금 수사를 계기로 은행 대여금고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객이 은행과 사용계약을 해 연간 5천∼2만원의 수수료를 내고 이용하는 대여금고는 평균예금 잔고가 3백만원 이상이라야 이용자격을 준다. 현대측은 신한은행 종로지점에서만 3개를 써온 것으로 확인됐다.
철저한 방범·방화장치가 되어있는데다 비밀이 보장돼 족보·토지문서·귀금속·고가골동품 등 귀중한 재산을 보관하는데 가장 좋은 시설이지만 그 은밀성 때문에 기업비자금 보관같은 특수목적에도 많이 이용된다는 설명이다.
은행에 예금으로 맡길 경우 거액의 이자가 보장되는 큰돈을 수표·현금으로 보관한 현대중공업의 사례는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신한은행 종로지점 2층 현대중공업 대여금고에 대한 심야 압수수색은 마치 첩보전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긴장감속에 진행됐고 워낙 많은 돈을 확인하느라 3시간 가까이 걸렸다.
경찰청 수사2과 형사 4명이 서울지법 손지호판사가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을 갖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5일 오후 11시20분쯤.
은행측은 2개의 다이얼·2개의 자물쇠로 4중 잠금장치가 된 30㎝ 두께의 금고문을 연뒤 다시 철제셔터를 올리고 금고방의 철제문을 열었다.
3평 남짓 크기의 금고방안엔 둥근 테이블이 준비됐고 형사 2명,은행감독원 검사역 1명,은행직원 4명이 들어선뒤 다시 철제셔터가 내려졌다.
은행측이 또 다른 금고박스에서 꺼내온 예비용 고객키와 은행키 2개를 이용,대여금고함 2개를 열자 외환은행 대행서류봉투 11개가 나왔고 경찰은 그안에 뭉치로 들어있던 수표다발을 원탁위에 쌓은뒤 수작업으로 세기 시작했다.
그러나 액수가 너무 많아 수표숫자를 확인하고 일련번호를 기입하는 방식으로도 시간이 걸리자 밤 12시쯤 은행측에 돈세는 기계를 요청했다. 그러고도 작업은 6일 오전 2시가 훨씬 넘어서야 끝났다. 세시간 가까이 걸린셈이다.<최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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