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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과 벌인 어떤 팔씨름(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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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 나라의 국민성을 간단히 단정하기란 지극히 어려우며 또한 위험한 일일 것이다. 2년반 가까이 독일에 살면서도 아직 독일 사람들의 국민성이 어떤 것인지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눈이 마주치면 무조건 미소를 보내는 프랑스인,첫대면인데도 진한 농담까지 서슴없이 건네는 이탈리아인에 비해 독일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무뚝뚝하고 눈빛이 곱지않은게 보통이다.
특히 독일인들은 외국인을 신기하다는듯 민망할 정도로 쏘아본다. 그러나 이때 같이 매서운 눈길을 보내면 열이면 열 모두 겸연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는게 또한 독일인이다.
이처럼 독일사람들의 국민성 가운데는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면도 있는 것 같다.
넥타이 매고 칵테일을 마시는,기자에겐 좀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저녁 파티가 있었다. 파티가 끝나고 귀가길에 서운하던 참에 평소 술친구인 외교관 한명이 2차를 제의했다. 차를 주차장에 아예 세워두고 실컷 맥주나 마시자며 베를린 시내로 맥주집을 찾아갔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외국인』 운운하는 비아냥 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몸집이 큰 독일인이었다.
「모르는체 참을까」하다 만류하는 외교관의 손을 뿌리치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최근 외국인에 대한 혐오증이 확산되고 있는 독일에서 이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당신 지금 뭐라고 말했소.』 예상못한 반격에 적지않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는 『아무말도 안했다』고 시치미를 뗐다. 몇번 되물어도 같은 대답이었다. 독일에서는 이유없이 남에게 욕을 했거나 모욕하는 몸짓을 한 것이 증명되면 10여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계속 시치미를 떼는 그에게 훈계나 한마디 건네기로 했다.
『그러는게 아니오. 당신들에게 피해나 주려고 여기 있는 것 아니오.』
그 몸집 큰 사나이는 다시 느긋해지면서 비실비실 웃었다. 말로 하는 것으로 안되겠다 싶어 팔씨름을 제의했다. 팔씨름이란 힘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니까. 주위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고 동행한 외교관은 적지않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술집주인이 심판을 봤다.
『하나 둘 셋!』 시작과 함께 손목을 꺾었다. 한동안의 접전이 끝나고 심판이 독일인의 패배를 선언했다.
『야,서(영어의 예스,서)』라며 그는 『당신이 나보다 세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이 독일인의 표정은 그러나 조금전과 너무나 달랐다. 그야말로 울상이었다.
승리한 기분에 울상이던 그 독일인에게 위로와 함께 맥주를 한잔 권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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