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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간섭주의자 블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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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기 도중 사임하기로 했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에게 자리를 흔쾌히 물려주지 않고 질질 끌다가 마지못해 27일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이는 영국민에겐 물론 집권 노동당에도 다행한 일이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진부한 문구가 아니더라도 3기 연속 장기 집권하면 국민에겐 '피로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10년에 걸친 블레어 시대는 11년의 마거릿 대처 시대와 마찬가지로 산뜻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토록 오래 권력을 잡았던 블레어가 영국에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사실 '블레어주의'는 뉴레이버(신노동당)가 대처 시대의 유산을 영리하게 재포장한 것이다. 다만 '철의 여인' 대처보다는 조금 더 인도주의에 입각해 정책을 폈을 뿐이다.

그러나 외교 분야는 좀 다르다. 블레어는 '인도주의적 간섭(인도주의적 문제를 동반하는 국제적인 사태에 국제사회가 무력 개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는 새로운 독트린을 만들고 이를 성공적으로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이념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서방이 포스트 냉전 시대에 벌인 군사적 개입의 이미지를 도덕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는 도덕에 기반한 국제 문제 개입이 이처럼 눈에 띈 적이 없었다.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나 시에라리온의 포다이 상코와 같은 '인간 백정'들이 자국 국민을 무참히 살육하는 것을 강대국들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인도주의적 간섭'은 한때 그 말을 믿었던 많은 사람에게조차 추악한 용어가 돼 버렸다. 지금 블레어의 퇴진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정도다.

블레어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의 외교정책 핵심은 '리버럴(자유주의적) 간섭주의'라고 말했다. 세계는 간섭주의자들이 인권을 내세워 개입을 정당화한다 하더라도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야만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블레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간섭주의가 단순히 블레어만의 고집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그가 총애했던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전 세계은행 총재, 그리고 딕 체니 부통령도 그랬다.

블레어로서는 코소보와 이라크 개입에 도덕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강대국이 고통받고 있는 나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낡은 '리버럴 제국주의'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에 대해 블레어는 코소보와 시에라리온, 이라크에 대한 개입은 도덕적 가치 추구를 위해서지 결코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밀로셰비치를 밀어낼 때는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왜 후세인 축출에는 그렇게도 단호하게 반대했는지 의아해했다.

블레어는 자신을 신제국주의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되레 '리버럴 간섭'을 지지하지 않는 것을 비도덕적인 처사라고 비판한다. 19세기 식민주의자들도 자신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아프리카 정복자 세실 로즈는 '제국주의는 박애주의'라고 주장했다. 체니 부통령도 그랬다.

블레어는 앞으로 강연과 회고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하겠지만 귀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블레어는 이 시대의 마지막 간섭주의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후계자인 고든 브라운도, 부시의 후계자도 이라크는 고사하고 코소보에서와 같은 개입도 더 이상 시도하지 않을 전망이다. 블레어가 '리버럴 개입주의'를 우선순위에 두는 바람에 생긴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리=한경환 기자 임기 도중 사임하기로 했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에게 자리를 흔쾌히 물려주지 않고 질질 끌다가 마지못해 27일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이는 영국민에겐 물론 집권 노동당에도 다행한 일이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진부한 문구가 아니더라도 3기 연속 장기 집권하면 국민에겐 '피로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10년에 걸친 블레어 시대는 11년의 마거릿 대처 시대와 마찬가지로 산뜻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토록 오래 권력을 잡았던 블레어가 영국에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사실 '블레어주의'는 뉴레이버(신노동당)가 대처 시대의 유산을 영리하게 재포장한 것이다. 다만 '철의 여인' 대처보다는 조금 더 인도주의에 입각해 정책을 폈을 뿐이다.

그러나 외교 분야는 좀 다르다. 블레어는 '인도주의적 간섭(인도주의적 문제를 동반하는 국제적인 사태에 국제사회가 무력 개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는 새로운 독트린을 만들고 이를 성공적으로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이념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서방이 포스트 냉전 시대에 벌인 군사적 개입의 이미지를 도덕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는 도덕에 기반한 국제 문제 개입이 이처럼 눈에 띈 적이 없었다.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나 시에라리온의 포다이 상코와 같은 '인간 백정'들이 자국 국민을 무참히 살육하는 것을 강대국들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인도주의적 간섭'은 한때 그 말을 믿었던 많은 사람에게조차 추악한 용어가 돼 버렸다. 지금 블레어의 퇴진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정도다.

블레어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의 외교정책 핵심은 '리버럴(자유주의적) 간섭주의'라고 말했다. 세계는 간섭주의자들이 인권을 내세워 개입을 정당화한다 하더라도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야만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블레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간섭주의가 단순히 블레어만의 고집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그가 총애했던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전 세계은행 총재, 그리고 딕 체니 부통령도 그랬다.

블레어로서는 코소보와 이라크 개입에 도덕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강대국이 고통받고 있는 나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낡은 '리버럴 제국주의'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에 대해 블레어는 코소보와 시에라리온, 이라크에 대한 개입은 도덕적 가치 추구를 위해서지 결코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밀로셰비치를 밀어낼 때는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왜 후세인 축출에는 그렇게도 단호하게 반대했는지 의아해했다.

블레어는 자신을 신제국주의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되레 '리버럴 간섭'을 지지하지 않는 것을 비도덕적인 처사라고 비판한다. 19세기 식민주의자들도 자신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아프리카 정복자 세실 로즈는 '제국주의는 박애주의'라고 주장했다. 체니 부통령도 그랬다.

블레어는 앞으로 강연과 회고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하겠지만 귀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블레어는 이 시대의 마지막 간섭주의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후계자인 고든 브라운도, 부시의 후계자도 이라크는 고사하고 코소보에서와 같은 개입도 더 이상 시도하지 않을 전망이다. 블레어가 '리버럴 개입주의'를 우선순위에 두는 바람에 생긴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리프 미국 오픈 소사이어티 연구소 이사
정리=한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