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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폐허가 된 밤市 '성채'는…실크로드 지켰던 진흙의 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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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란 대지진으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예정이었던 밤시(市)의 '아르게 밤(Arg-e-Bam:밤 성채)'이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27일 이란 정부에 유적 조사팀을 파견할 수 있도록 허가해줄 것을 긴급 요청했다.

무니르 부체나키 유네스코 문화유산 전문가는 "이란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이길 간청한다"며 "세계 문화유산 지정 준비 과정에서 파괴된 이 중요한 유적의 복원을 위해 유네스코는 지원과 조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유적은 2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세계 최대의 진흙 성채(城砦:성과 요새)로 오아시스와 대추야자 숲 한가운데 우뚝 솟아 고대 도시의 번영과 영화를 상징해 왔다.

아르게 밤은 2천년 전인 파르티아 왕국 시절 시작된 요새의 축성으로 모양을 잡아나가다 3~4세기께 사산 왕조 시기에 군사시설로 제 모습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지진 이전까지 남아 있던 건축물들은 주로 13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세워진 것들이다. 진흙 성채는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존돼 매년 10만명가량의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성채 도시를 형성했던 아르게 밤의 경내는 가로 2백m, 세로 3백m다. 성채의 중앙엔 왕의 거처가 높게 자리잡고 있으며 평민들이 살던 마을은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경내엔 2백마리의 말을 키우던 마구간과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운동장 및 공중 목욕탕, 그리고 12세기에 세워진 모스크(이전엔 조로아스터교 사원)와 병기창고 등의 시설물이 들어섰다.

이 고대도시의 외곽 진흙벽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는 가파르고 좁은 계단도 명물로 통했다.

성채 곳곳에는 38개의 경비용 탑이 세워졌으며, 중앙탑은 65m 높이로 경내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비상시에 왕의 거처에서 성채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게 만든 비밀 지하통로와 얼음을 저장할 수 있는 얼음창고 등도 호기심을 끄는 시설로 유명했다. 겨울에 쌓여 있던 얼음 덩어리들을 녹여 여름에 식수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창 번성하던 17세기 말 아르게 밤엔 1만3천여명의 시민들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관청이나 병영, 마구간과 평민 가옥의 구분이 확실하다.

이로 미루어 아르게 밤은 통치자와 권력층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성 안에서 살았던 공동체 사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722년 아프칸족이 침입한 이래 일반 시민들이 모두 성 밖으로 이주했으며, 성채는 이후 1932년까지 군사시설로 사용됐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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