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끝) 개방·개혁 14년 공과|대외무역이 GNP 37% 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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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중국의 개방·개혁은 1949년 사회주의 체제의 신중국이 등장한 「제1건국」에 버금가는 「제2의 건국」으로 불릴 만큼 대역사라 할 수 있다.
혁명 1세대 출신인 한 지도자에게 「제1건국」과 「제2건국」의 차이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보았다.
『제1건국은 중국 민중이 중국의 주인으로 등장한 것이었으며, 제2건국은 이 주인이 잘 살아보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간단 명료한 답변이었다.
어느 대목에서건 건국 이후 초기 30년간을 특징 지은 마오쩌둥 시절의 영구혁명이나 사회주의 이념 실천과 같은 생경한 용어는 찾아 볼 수 없다.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이란 곧 중국식 자본주의 건설에 다름없다.』
한 지식인의 풍자적인 설명에서도 중국은 자신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뿐 추상적인 이념 문제 해결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안을 따라, 강을 따라, 국경을 따라, 그리고 내륙의 거점을 중심으로 중국은 이미 3백여개 도시와 지역을 개방했다.
78년 개방·개혁정책이 실시된 지 14년째에 이르러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제치고」있는 것이다.

<모든 문 열렸다>
『사고방식을 바꾸고 새 길로 달려나가자(환뇌근, 틈신노)』와 같은 구호 아래 『외국 투자가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매일같이 수억위안의 투자계약이 맺어지는(만상운집, 일첨억원)』성과가 대도시로부터 향촌 곳곳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당국이 집계한 관계자료를 통해서 이 같은 중국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개방·개혁직전인 지난 78년까지 중국 국민총생산액(GNP)에서 대외무역이 차지하던 비중은 한자리 숫자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말 현재 37%로 늘었다.
지난 9월말 현재 각급 공상 행정관리국에 등록된 중국의 공상 기업수는 5백45만7천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3%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사영인 개체 호수는 1천4백여만개에 2천3백여만명이 종사하고 있다.
한편 외국투자 기업수는 6만여개, 총투자액이 2백8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6%의 급증세를 기록하고 있다. 외자기업은 중국 공업총생산액의 5%를 차지하면서 중국 총 수출액의 16.8%인 1백21억 달러 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남부지방은 광주·심수를 축으로 자유방임경제의 고전적 성공사례인 홍콩과 접목작업이 뿌리를 내리고 있음이 확인됐다.
중국공업의 중추인 상해 일대는 70%의 비중을 차지하는 중·대형 국영기업체들의 시장원리에 따른 체질 개선 작업이 숨가쁘게 추진되는 한편, 북방으로는 「극빈에서 극부」로 변신하는 신화를 이룩한 대구장의 사례도 볼 수 있었다.
개혁·개방의 현 단계는 중국으로 들어가는 출구는 열렸지만, 아직 중국인들 자신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대문이 열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만한 개혁의 동남풍은 중국인들의 의식과 생활방식에 커다란 충격과 변화를 초래하고 있음도 확인될 수 있다.
승포(계약), 개체호, 고부제(주식제)등 개방·개혁정책으로 새롭게 도입된 제도는 새로운 용어를 출현시켰다.
컴퓨터(전뇌), 에어컨(공조), 가라오케(잡납OK)등 신용어가 이미 2천7백여개나 집계되었다는 학술보고도 있다.

<경제 효율 의문>
『붉은 등을 높이 들어라(대홍등농고고괘)』 『국두』등의 국내상영이 허용된 지난 9월. 상해의 15개 일류극장들은 일제히 『국두』의 동시상영에 들어갔다. 초저녁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부족한 영화필름을 극장끼리 릴레이식으로 돌려가며 상영했지만, 열광하는 관객들의 수는 20여일 째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30, 40년대 농촌이야기를 그렇게 몰입하는 이유를 한 대학생은 『중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주의 덕목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강요해온 부자연스러움과 위선에 식상한 관객들이 목말라 찾던 것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최근 상해에서 성애를 주제로 한 성인영화 『정인』도 이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개방정책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외국돈을 끌어들여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관한 투명도가 지극히 낮다는 것이다. 한 지식인은 중국이 경제발전속도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경제효율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내세워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4마리 용에서 배울 것은 배우지 않고 그 반대만 배워오고 있다』는 개탄은 공직에 머무는 동안 내것만 챙기기 바쁜 세태를 우려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신적 가치관의 혼란은 단순히 개혁에 비판적인 보수세력만의 우려가 아니다. 밀려드는 서구의 물질문명 가운데 사회주의적 이념의 적실성이 밀려나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새로운 가치관이 모색되고있다.
덩샤오핑이 유교를 기반으로 경제건설에 성공한 싱가포르를 칭찬한 것이나, 당내 선전담당 고위책임자가 가정의 사회적 기능에 관심을 돌리는 것은 앞으로 중국사회의 진로와 관련해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한편 개혁·개방정책 추진으로 지역간 경제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외에 민족간 격차도 제기돼 주목을 끈다.
소수민족이 편중된 지역일수록 내륙에 위치하며, 동시에 자원이 집중된 조건에서 한족들의 밀집지역인 연해지방으로 원자재가 유출되는 실정은 결국 갈수록 한족위주의 경제구조로 재편성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남에서 북으로 연결되는 해안을 낀 성들의 경제규모는 내륙지방 전체의 경제규모를 10배 가까이 초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개방·개혁작업의 복병으로 인구·실업·교육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량실업이 초래할 사회·정치적 안정에 미칠 영향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우려되는 것은 이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금세기 말까지 13억으로 늘어날 인구문제는 특히 60세 이상 노령 인구가 10%대를 점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어서 그 심각함이 더하다.

<인간욕망 인정>
특히 79년부터 실시된 1자녀 출산제는 거꾸로 장성한 1자녀가 부양해야할 직계가족수를 4∼5명선으로 늘리게 돼 실업문제와 함께 멀지 않은 장래에 부닥치지 않을 수 없는 큰 사회문제다.
이밖에 사회주의 체제에서 10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는 임금구조에서 제9급을 차지하는 지식인 냉대정책은 개혁·개방을 추진할 전문 인력 조달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유확대와 그 궤를 같이하는 지식인의 사회적 지위상승이 앞으로 얼마나 해결돼 나갈지 관심거리다.
그러나 이 같은 불리한 상황들이 개혁·개방을 늦추거나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중국의 진로에 있어 마치 역전극과도 같은 짜릿한 「역사적 결단」을 엿볼수있다.
사회주의의 전반 30년을 청산하고 실사구하의 개혁을 과감하게 실현한 등소평의 역할은 이 같은 이유에서 위대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중국은 전인미답인 경제체제 개혁이라는 대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적 발전, 민주화 등 장래의 진로에 불확실성이 많이 깔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역사에 일찍이 찾아보기 어렵던 「인간욕망의 인정」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기회 앞에 거대한 발전의 잠재력에 불을 댕기고 있는 것이다.【글=전택원 특파원 사진=신동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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