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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204 - 닭도리탕·닭볶음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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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의 영향으로 닭과 오리 고기 소비가 급격히 줄어듦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양계 농가는 물론 관련 업계도 타격을 받고 있다. 익혀 먹으면 인체에 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삼계탕·닭갈비 집이나 튀김(프라이) 집 등 닭고기를 요리해 파는 업소들의 매출이 뚝 떨어져 울상이다.

닭고기 요리의 종류는 삼계탕·백숙·튀김·구이·볶음 등 다양하며, 그중에 '닭도리탕'이 있다. 식사로도 괜찮지만 얼큰한 맛 때문에 술 안주로 잘 어울려 즐겨 찾는 요리다. 그러나 '닭도리탕'은 일본어 '도리'가 들어간 말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어로 '도리(鳥·とり)'는 새 또는 닭을 뜻한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이면 즐겨 하는 화투 놀이 '고스톱(go-stop)'의 약(約) 중에 '고도리'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도리'가 들어간 일본말이다. 화투짝 매조(한 마리)·흑싸리(한 마리)·공산(세 마리) 석 장에 모두 다섯 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다고 해서 일본어로 '고도리(五鳥·ことり)'라 부른다.

'도리'는 우리말의 '닭'(아래아)이 일본으로 건너가 받침이 없는 일본어에서 '닭(아래아)>다(아래아)리>도리'의 변화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어쨌든 우리말과 일본어 '도리'가 결합한 '닭도리탕'은 '닭+닭(도리)+탕(湯)'이 되는 셈이어서 의미상으로도 겹말이다.

우리말 순화 용어는 '닭볶음탕'이다.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자주 쓰다 보면 익숙해진다. 오순도순 모여 앉아 '닭볶음탕'으로 간단하게 한잔 하면서 저무는 한 해를 돌아보고, 혹 요리 방식이 '볶음탕'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면 우리말로 기막힌 이름을 한번 만들어 보시길.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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