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영화천국] 스크린 귀퉁이에 웬 구멍? 필름 숫자 표시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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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를 보다 보면 스크린 오른쪽 귀퉁이에 하얀 구멍이 보일 때가 있다. 필름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가.

A : 아니, 화면에 비가 오다 못해 구멍까지?! 하고 경악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일단 그 구멍을 발견한 관찰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 구멍은 필름의 하자, 즉 화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영사 기사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장치라고 보면 된다.

무슨 소리냐. 우리가 보는 영화는 여러 권(reel)의 필름을 이어 상영한다. 상영 시간이 1백분 남짓이면 필름은 6권가량 된다. 최신식 멀티플렉스를 빼고는 아직 대개의 극장에서는 영사기 두 대로 영화를 튼다. 한 대당 필름을 3권에서 4권 걸 수 있다. 문제는 첫번째 영사기에서 두번째 영사기로 '스무스하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영사 기사를 도와주는 것이 바로 이 하찮은(!) 구멍이다. 구멍은 필름 한 권이 끝나기 6~7초 전에 한 번, 그리고 1초 전에 한 번 등장한다. 구멍 숫자로 필름이 몇 권 돌아갔는지 알 수 있고 영사기를 언제 갈아타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 실로 '위대한 구멍'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구멍은 영사 기사 마음대로 뚫는 게 아니다. 제작사에서 미리 뚫려 나온다. 외화는 대부분 구멍이 있지만 한국 영화는 구멍 없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사 임의대로 필름에 매직으로 표시를 하거나 송곳으로 구멍을 뚫었단다. 심지어 한 변두리 극장의 어느 기사분은 눈이 나쁘다는 이유로 필름 한가운데 구멍을 뚫기도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성 전설도 전해진다.

자, 이렇게 알고 나니 앞으로는 극장 가서 오른쪽 귀퉁이 쳐다보느라 정작 영화를 못 봤다며 투덜댈 분이 나올지 모르겠다.

다음은 한 영화 관계자의 조언이다. "영화가 언제 끝나나 시계를 볼 게 아니라 구멍 숫자를 헤아리십시오. 보통 2시간이 안 되는 영화면 필름이 6권이니 구멍 10개를 보고 나면 집에 갈 시간이 임박한 것입니다."

호기심이 풀렸다. 그렇다면 보너스 하나. '반지의 제왕3-왕의 귀환'에 뜨는 'K-○○○'라는 흰 글씨는 무엇일까. 정답은 불법 파일 유포자를 잡기 위해 영화사가 매겨 놓은 고유 넘버다. 관람시 눈에 거슬리더라도 다 고육지책이니 널리 양해하시길.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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