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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독일의 「총체적 위기」/유재식 베를린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요즘 독일의 나라꼴 되어가는 것을 보면 독일이야말로 「총체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하나 제대로 돼가는 일이 없다.
23일자 슈피겔지는 온통 이러한 기사들로 꽉 채워져 있다.
독일공업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 벤츠사가 사상 처음으로 조업을 단축하고 94년말까지 2만7천5백명을 해고키로 했다는 기사는 통일후 어려워지고 있는 이 나라의 경제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다 「청소년 알콜중독자 50만명」이라는 기사나 「매년 30만명의 여아가 아버지등으로부터 성폭행당하고 있다」는 기사등은 「갈 데까지 간」 독일사회의 병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이같은 총체적 위기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독일병」은 점차 확산되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이다.
독일이 통일후 구동독재건등으로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는 터에 동유럽등지로부터 물밀듯 밀려오는 난민으로 골치를 앓고있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독일인들의 외국인 테러를 결코 정당화 시켜줄 수는 없다.
독일에 난민이 밀려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나치시절 유대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그처럼 못된 짓을 하지 않았다면 난민쇄도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기본법 16조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하나 독일이 전후 미국등 외국의 도움으로 경제적 부흥을 이룩했고 통일까지 달성했으면 이제 그 빚을 갚는 것이 도리 아닐까.
빚을 갚기는 커녕 오히려 외국인,그것도 힘없고 배고픈 외국인들만 골라 학대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에 대해 국제사회가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테러 사건에 대해 여야정치지도자들이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나섰고 이를 규탄하는 시위도 벌어졌지만,이미 중증에 이른 이 독일병을 치유하기 위해선 「혁명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독일정부는 군대의 해외파병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하면 극우파를 진압하기 위한 유엔군의 파견을 요청하라는 외국 비아냥에 진정 부끄러워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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