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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성 예금증서(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고려 후반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지금의 금융업자에 해당하는 객주가 있었다. 화물 집산지에 자리잡고 그 매매에 관련된 업무를 보는 것이다. 그가 처리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여신업무다. 어떤 대주가 물건을 팔지 못하거나 살 사람을 찾는동안 해당 상품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해주고 어음도 할인하거나 인수하기도 했다.
음표 또는 음지라고도 불렀던 어음은 종이의 한 가운데에 금액을 표시하고 오른쪽에 발행일과 발행인의 주소·성명을 기입,날인한 다음에 이것을 중앙에서 절단했다. 어음의 우측(웅표)은 수취인에게,그리고 좌측(자표)은 발행인이 보유하면서 나중에 현금을 지급할때 절단된 어음을 서로 맞춰보고 진짜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증서의 유통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신용이다. 금융업이 발단된 선진국에서 은행마다 발행하는 개인수표는 제각각의 문양과 색깔을 갖고있다.
어떤 은행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금박을 한 수표까지 사용토록 하고,또 같은 수표도 크고 작은 여러가지 유형을 두어 고객의 선호에 따라 고르도록 하고있다.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도가 매우 높아 증서의 유통이 중단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최근 상업은행 지점장 자살사건에서 문제점이 드러났거나 별도의 위조단에 의해서 유통되고 있는 양도성예금증서(Negotiable Certificate of Deposit=CD)는 오래전부터 뉴욕 및 유럽금융시장의 인기상품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투자자들이 단기간의 여유자금을 굴리기 위해 전문딜러나 브로커를 통해 주요 선진국의 특정은행이 발행한 CD를 사고 팔며 관련 증서는 중개기관에 예탁하는 것을 관행으로 해왔다. 우리나라도 전통적인 예금수단만으론 더 이상 부동자금을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있어 지난 70년대에 두번 실시한 적이 있는 CD제도를 84년에 재개했다. 사채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높은 유동성과 무기명이라는 특혜까지 부여했다. 이 제도가 지금 발목이 잡힌 것은 아직도 비정상적인 금융관행과 증서의 진위에 관한 뿌리깊은 불신 때문이다.<최철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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