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희소금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할수록 고릴라의 멸종이 가속된다."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이야기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휴대전화나 컴퓨터 기판 등에 쓰이는 부품 중 탄탈 콘덴서라는 게 있다. 일정한 전압을 유지시켜 주는 기능인데 고온에 강한 금속인 탄탈이 다른 재료보다 성능이 뛰어나고 소형화에 유리하다.

휴대전화의 세계적 보급과 함께 탄탈을 함유한 광물 콜탄은 일약 노다지가 됐다. 하지만 최대 매장국인 콩고민주공화국에선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었다. 콜탄의 채굴과 유통이 무장 반군 세력의 수중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반군은 강바닥 진흙에 파묻힌 진흙에서 채취한 콜탄을 팔아 무기와 활동 자금을 조달한다. 콩고 내전이 10여 년 만에 겨우 끝나가는 단계이지만 콜탄 산지인 동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멎지 않고 있다. 그런데 콜탄 산지는 하필이면 고릴라 서식지와 일치한다. 지난 10년간 들이닥친 콜탄 채굴꾼으로 산림이 황폐해지면서 애꿎은 고릴라들까지 개체수가 반감되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탄탈과 같이 매장량 자체가 많지 않거나 채광.정련(精鍊)이 어려운 금속원소를 희유금속(稀有金屬.rare metal) 또는 희소금속이라 부른다. 인듐.텅스텐.니켈.코발트 등 31가지 원소를 특정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첨단 산업에서 활용도가 높다. 가령 인듐은 액정화면이나 터치 패널의 전극막으로 필수 재료다. 백금은 그 자체 귀금속이기도 하지만 자동차 배기 가스 촉매나 연료전지용 촉매로 활용된다.

희소금속을 둘러싼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질 기세다. 향후 50년이면 지구상의 모든 매장량이 바닥을 드러낼 판이지만 수요는 날로 급증하는 바람에 5년 전에 비해 인듐 8.5배, 니켈 7배, 몰리브덴은 6배로 가격이 폭등했다. 최대 생산국인 중국은 지난달 모든 희소금속에 대한 수출허가 심사를 강화하고 일부 품목은 관세를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수요도 충당하기 벅차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지난주 일본 경제산업성은 희소금속 안정 확보를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7개 금속에 대해서는 60일 사용분의 비축량을 확보하고 자원외교를 강화해 중국 이외의 수입처를 뚫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대체 재료를 개발한다는 내용이다. 희소금속 전쟁의 서곡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탄탈 노다지를 둘러싼 콩고 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총성 없는 무역전쟁이요 외교전쟁이란 점이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