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 골프장, 170억 날리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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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로 준공 3년이 되는 난지 골프장은 아직까지 정식 개장을 하지 못하고 무료 시범 라운드만 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골프장을 공원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신동연 기자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12일 오전 11시 서울 월드컵공원 난지 골프장. 평일인데도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나이스 샷'을 외쳐 9홀짜리 퍼블릭 골프장은 활기가 넘친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매립가스 누출지역 불조심’ 플래카드를 제외하면 여느 골프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옛 직장 동료와 함께 나온 A씨(53ㆍ서울 잠원동)는 “잔디 관리가 잘돼 있고 코스 거리도 길어 퍼블릭 골프장 치고는 A+”라며 “회원제 골프장을 100점이라고 하면 85점 정도”라고 말했다.

요즘 이 골프장에서는 오전 6시26분부터 8분 간격으로, 하루 55팀이 골프를 즐긴다. 인터넷으로 예약 신청을 받는데 경쟁률이 150 대 1을 웃돌 정도로 인기다. 하지만 국민체육진흥공단(공단)이 146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20일로 준공 3년이 되지만 ‘무허가’다. 정식 개장도 하지 못 한 채 무료 시범 라운딩만 계속하고 있다.

서울시와 공단이 운영권을 둘러싸고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판결 결과에 관계 없이 골프장을 가족공원으로 바꾸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 경우 골프장 공사비와 관리비 등 적어도 170억원을 물어줘야 한다.

쓰레기 매립지에 골프장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는 2000년 서울시가 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사회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1998년 박세리가 US오픈에서 우승,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은 시점이다. 골프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고 서민들도 싼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퍼블릭 골프장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공단이 골프장을 건설해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면 서울시는 공단에 최장 20년간 운영권을 주기로 2001년 7월 계약했다.

공단은 서울시에 사업계획을 제출하면서 이용료를 1만5000원으로 책정했고 서울시도 동의했다. 그러나 그 뒤 공단은 1만5000원을 받아서는 20년 후 640억원의 적자를 보게 된다며 주말에는 3만9000원까지 받겠다는 방침을 서울시에 전달했다.

이에 맞서 서울시는 골프장 준공 직전인 2004년 3월 ‘체육시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이용료를 1만5000원으로 못 박았다. “골프 대중화가 목표인데 공단이 자꾸 이용료를 올리려고 해 공공시설임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공단은 반발했다. 골프장 운영권을 공단이 갖고 있는데 서울시가 이를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골프장이 준공된 직후 서울시ㆍ마포구를 상대로 체육시설 조례 무효 확인소송과 체육시설업 등록거부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심까지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골프장은 공공시설이 아니라 영리시설이며, 투자비를 회수할 때까지 공단이 골프장을 운영하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이에 불복해 현재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국무총리실ㆍ감사원 등이 나서 두 기관의 다툼을 중재하려고 했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서 공단은 서울시를 압박하기 위해 2005년 10월 골프장을 무료 개장해 양측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서울시의 입장도 단호하다. 최근 대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골프장을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도시계획시설 결정 권한을 활용, 골프장을 공원으로 지정해 강제 수용할 수도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골프장 공원화는 오세훈 시장의 선거 공약으로 시민ㆍ환경단체도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는 행정으로 세금을 낭비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공원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골프장 조성비 146억원과 관리비 25억원 이외에 기회비용까지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공원으로 바꾸는 데 수십억원이 추가로 들어가야 한다. 이 모두가 세금에서 나가야 할 돈이다. 박인규 서울시 공원과장은 “공원을 조성하면 하루 10만 명이 이용할 수 있어 200여 명이 이용하는 골프장에 비해 효용이 훨씬 크다”며 입장 선회의 논리를 제시했다.

공단은 골프장을 개장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골프 저변 확대'라는 원래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따져도 손해볼 것 없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을 공원으로 만들 경우 서울시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공단 신용갑 팀장은 “골프장을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서울시로부터 통보받지 못했다”며 “서울시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면 법리 검토 등 대응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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