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나이를 먹는다, 관객과 함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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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03면

이번 주 ‘피플’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다. 요즘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초록괴물 ‘슈렉’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세습 왕위가 부담스럽고 아빠 되기가 두려운 ‘겁나 먼(Far Far away) 왕국’의 소시민 이야기는 개봉 첫 주말(9~10일) 관객점유율 50.6%를 기록하며 누적관객 161만6305명을 끌어 모았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슈렉’

2001년 첫선을 보였을 때만 하더라도 ‘슈렉’의 포인트는 동화 뒤집기, 디즈니 비꼬기, 히트 영화 패러디인 걸로 보였다. 성스러운 원전(原典)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 3D 엽기 애니메이션에 성인 관객들은 열광적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3년 뒤 돌아온 ‘슈렉 2’는 1편에서 완성된 자신의 신화마저 뒤흔들며 시작했다. 마침내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을 리가 없다. 둘 사이를 떼놓으려는 주변 음모에 맞선 슈렉과 그 친구들의 모험담은 전 세계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1위(9억2070만 달러)를 기록했고, 국내서도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340만 명)을 세웠다.

‘슈렉 2’의 기록을 깰 자는 현재로선 ‘슈렉 3’ 뿐인 듯하다. 1, 2편에 비해 패러디의 촌철살인이 약해졌다는 평이 있긴 해도, ‘슈렉 3’는 여전히 풍요로운 텍스트다. 무엇보다 지난 6년 사이 주인공 슈렉은 나이를 먹었다. ‘어른’이 된 슈렉은 자신의 옛 자화상을 보는 듯한 삐딱한 10대 아서를 달래고 감화시키는 입장이 됐다. ‘자식’이라는 선물 겸 애물은 언제까지나 피터팬이고 싶은 그에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요구한다. 일부 관객이 “슈렉마저 보수화됐느냐”고 불평을 터뜨리는 지점이다.

제작사 드림웍스는 2010년 4편을 위시해 총 5편을 내겠다고 공언했다. 사실상 ‘시즌제’다.

미국 드라마에서 일반화된 시리즈 양식인 시즌제는 일정한 주기를 두고서 주요 캐릭터의 구체화,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성장과 변화를 통해 고정관객을 계속 끌고 간다. 소설에 뿌리를 둔 영화 ‘해리포터’나 이번 주말 3편이 개봉되는 ‘오션스’ 시리즈도 그런 맥락이다. 사건의 유사성ㆍ연속성보다 경험을 통해 성장, 진화해가는 캐릭터가 초점이다.

그래서 슈렉의 성장통은 낯설지 않다. 동시대 관객과 함께 그는 나이 들어갈 것이다. ‘마침내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의 뒤에 뭐가 이어지는지, 어릴 적 동화가 말해주지 않았던 ‘현실’을 나란히 통과하면서 말이다. 슈렉더러 “보수화됐다”고 조롱할지언정 그게 대다수 현실 속 관객의 사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미 그 모습이 우스운 신세대는 더 독해진 패러디를 들고 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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