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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에게 고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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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라 안팎의 미술시장이 뜨겁다. 마치 세상 모든 돈이 미술시장으로 몰려드는 듯하다. 일부 비관론자들이 2~3년 전부터 세계 미술시장의 거품론을 제기하고 거품 붕괴를 경고해 왔으나 이를 비웃듯 시장은 더욱 고도를 높여 날고 있다. 뒤늦게 호황에 가세해 겨우 15년 전의 고점을 돌파한 우리 시장의 일각에서도 거품 경계경보가 들리는 가운데 시장은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과연 거품인가? 아무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원동력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모든 자산시장은 종국엔 거품을 만든다. 탐욕의 광기에 휩싸인 인간이 이성을 되찾는 것은 거품이 터진 뒤다. 사후에 돌이켜 보면 자명했던 거품이 거품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미술품이 잘 팔리고 가격이 오르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미시적으로 보나 거시적으로 보나 우리나라에서 거품을 논하기는 시기상조로 보인다. 하지만 무분별한 가격상승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냉철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그만큼 짙다. 모든 성장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내가 특히 걱정하는 것은 30~40대의 작가들이다. 아직 인생관이 무르익지 않고 작품세계가 완숙되지 않은 혈기 방장한 이들이 시장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작품이 잘 팔리든, 팔리지 않든 시장의 유혹을 외면하기 어렵다. 안 팔리는 작가는 유행에 영합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고, 팔리는 작가는 밀려드는 작품 구입과 전시 요청에 넋이 나간 작품을 대량생산하기 쉽다. 벌써 이런 조짐이 보인다.

작품 가격은 작품이 주는 감동의 크기이며, 작가가 작품에 혼을 바치고 목숨을 걸 때 우리는 감동한다. 유행을 따르거나 자기 복제한 미술품은 상업화와 다를 바 없다. 시장과의 야합은 자멸에 이르는 길이다. 미술시장은 냉혹하다. 이런 작가는 금방 죽는다. 시장이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작가는 산다. 피카소는 말했다. "성공이란 항상 대중에게 아첨하는 자만이 누리는 것이라고 어디에 쓰여 있는가? 나는 타협하지 않고 어떤 난관에 처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피카소는 대중의 열광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과 변신을 거듭하며 나아갔다. 곡예사를 즐겨 그린 그는 "예술가의 정신은 한 곳에 머물 수 없다. 낯선 새로운 땅을 찾아 부단히 떠나야 하는 곡마단의 숙명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렸을 때 동료와 비평가들은 실망과 분노로 등을 돌리고 당대 최고의 화상 볼라르는 피카소의 신작 매입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훗날 이 작품은 입체주의의 출발점이자 현대미술의 효시로 평가받았다. 피카소는 성공을 바랐다. "성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술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소위 예술에 대한 숭고한 사랑만으로 작업해야 하며 세속적인 성공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점잖게 말한다. 그것은 잘못이다. 예술가는 성공할 필요가 있다.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작품을 지속적으로 창작해 나가기 위해서 그렇다."

그러나 피카소는 성공이 대중 속에 있지 않고 자유와 고독 속에 있음을 알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부와 명성을 원하면서 가난한 사람의 자유를 꿈꿨다. 피카소는 늘 고독 없이는 어떤 예술도 창조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세잔과 반 고흐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고독 속에서 작업했다. 고독은 그들의 불행이자 축복이었다. 이해받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작가들의 성공은 축복할 일이다. 그러나 더 큰 성공은 자유와 고독 안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시장도 그들의 자유와 고독을 존중해야 한다. (피카소의 말은 김원일 著 '김원일의 피카소'에서 인용)

김순응 k옥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