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김승학 프로. [중앙포토]
나와 김 프로는 72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월드컵에도 함께 출전했다. 전년도 대회에서 5위를 차지했던 우리는 호흡이 척척 맞았다. 멜버른대회에서 7위에 오르자 우리에게 '월드컵 황금콤비'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쯤에서 김 프로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는 178cm의 큰키에다 힘이 좋아 샷 거리가 길었고 공을 다루는데 소질이 있었다. 성격은 침착했다.
73년 아시아서킷인 필리핀오픈에서 우승한 뒤 국제무대에도 알려졌다. 김 프로와 나는 함께 일본 투어에도 몇 번 출전했다. 일본 투어인 미스카이도대회 때의 추억이다. 당시 나는 큰 골프백과 옷가지를 넣은 트렁크를 메고 기차와 전철을 타고 도쿄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대회 개최지로 갔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연습라운드를 시작했다. 어깨에 멍이 들어 있었다. 김 프로가 내게 "그러고도 연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해야지." 내 대답은 간단했다.
그는 "저는 앞으로 이렇게 못하겠습니다. 보통 노동이 아닙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사실 나는 선배로서 그를 후계자로 키워보고 싶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나만큼 지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허리 부상으로 전성기를 길게 누리지 못했다. 아쉬울 다름이다.
김 프로는 83년 통산 9승을 거두고 은퇴했다.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석교상사를 차려 브리지스톤 클럽과 공을 수입했다. 91년에는 일동레이크골프장을 만들어 초대 사장을 지냈고, 2000년부터는 제10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지금 전라북도 웅포에 베어리버 골프클럽을 만들고 있다. 목표는 월드컵대회를 한국에 유치하는 것이다. 베어리버는 코스 총길이가 7780야드나 된다. 길이로는 세계 5위 안에 드는 장거리 클럽이다.
얼마 전 김 회장과 통화를 했다. 그는 언제나 반갑게 나를 맞는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던 악동 선배에게 말이다.
한장상 KPGA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