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문제(3당공약의 허실: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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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노­사­학참여 쟁점합의」는 대표성 시비소지 민자/복수노조 허용 등 획기적… 노­노 갈등우려도 민주/후생·복지에 초점 「노동법원」은 필요성 의문 국민
노사문제에 대한 3당의 공약은 상당부분 비슷한 것도 사실이나 중요 쟁점사안에선 확연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억눌려 왔던 욕구들이 한꺼번에 분출,우리 사회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노사갈등도 어느정도 진정돼 가는 추세지만 여전히 뇌관과 같은 민감한 요소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사관계 공약은 각당의 노선과 색깔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3당의 공약은 크게 보아 김영삼민자당후보가 현행 틀속에서의 점진적 노사관계 개혁을,김대중민주당후보가 획기적 개혁을 각각 내세운 반면 정주영국민당후보는 후생·복지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동관계법 개정에 대해 김영삼후보는 「노사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목표로 근로자·사용자·학계대표가 참여하는 「노동관계법연구위원회」에서 전향적으로 검토,쟁점문제에 관한 범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노사간 이익분쟁에 대한 정부개입을 줄이고 자율적 해결노력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개입축소·범국민적 합의도출이란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있지만 각계의 대표성을 둘러싸고 또 그 결과에 대해 노동운동가들이 시비하고 반발할 여지가 다분히 있다. 그래서 자칫 개악기도라고 비판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비해 김대중후보의 공약은 가위 획기적이다. 조합설립신고를 행정관청에서 노동행정관청으로 일원화,신고와 동시에 이를 인정하는 등 노조설립의 완전 자유화·직권중재 규정삭제를 약속하고 있다.
김대중후보는 또 복수노조 설립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노동조합법이 국제노동기구(ILO) 조약취지에 어긋난다며 그것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그의 이같은 공약중 직권중재규정 삭제의 경우 노사간 완충지대와 냉각기를 없앨 위험성이 있고 복수노조허용문제의 경우 노조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더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 때문에 정주영국민당후보는 산업별체제로의 노조형태전환과 행정개입 없는 노조의 자율성 확보 등을 강조하면서도 복수노조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 후보는 또 신속하고 공정한 노사분쟁 해결을 위한 노동법원의 설치를 공약하고 있으나 이는 이미 법원에 노동관계사건 전담 재판부가 운영되고 있어 그 필요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노조의 정치활동 및 공무원노조 허용여부를 놓고 민자당과 민주·국민당이 양분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영삼후보는 노무에 종사하는 체신·철도공무원 등 일부 공무원을 제외한 공무원 노조불허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정치활동문제는 당내 찬·반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김대중·정주영후보는 공히 노조의 정치활동 허용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다만 공무원노조문제에 있어 김대중후보가 6급이하(교원노조포함)에 한해 단결권·단체교섭권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인데 비해 정 후보는 기술직에 한해 노조결성을 약속하고 있다. 김대중후보는 또 공익사업과 방위산업체 노동자의 노동권 제한을 축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즉 택시·은행·방송 등 다른 이용수단이나 매체가 있는 업종을 공익사업대상에서 제외하며 국가안보에 위태로울 정도가 아니면 방위산업체에 대해서도 공익사업에 준하는 쟁의행위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택시·은행 등 이들 업종중 1∼2개 업체면 몰라도 전체가 동시에 파업하는 경향도 없지 않고보면 사회전반에 미치는 타격을 어떻게 추스를 수 있을지가 우려된다. 때문에 공익사업 대상업종 제외 여부는 좀더 신중히 따져보아야 하며 방산업체의 경우도 「국가안보」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근로자의 후생·복지와 관련,3당 모두가 연 10만호 주택공급·근로소득세 40% 경감·근로주택공단 설립 등 분홍빛 청사진을 펼쳐 보이고 있지만 주택건립을 위한 구체적 부지확보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도시 주변에 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이 때문에 그린벨트를 무분별하게 훼손할 경우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많다.
3당은 한결같이 고용보험제 실시를 공약하고 있다. 물론 실직기간중 근로자에 대한 생계를 지원하고 재취업에 필요한 기능을 습득시키는 일은 선진 복지국가로 가는 이정표가 아닐 수 없고 우리도 머지않아 반드시 도입해야 할 제도다. 그러나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선 아무런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사탕발림의 선심성 공약만 나열하는 경쟁을 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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